"학비 4천200원 없어 제적당할 뻔"…명예박사된 장학회 이사장
거암장학회 서하진 이사장, 우석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한학자의 자손인 아버지는 노동을 모르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좌판을 깔아 생계를 이어갔다. 지금도 좌판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4남 3녀 중 장남인 그는 늘 공부에 허기졌다.
전북 장수군 계남면 시골에서 총명했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주로 전학 왔다.
전주 북중학교에 합격했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고모의 반지를 팔아 간신히 입학금을 냈다.
명문 전주고에 들어가서도 집안 사정은 비슷했다.
중·고교 생활 6년 중 2년은 굶다시피 했다.
1967년 고3 때 학비 4천200원을 내지 못해 제적당할 뻔했다. 일주일간 등교하지 못한 채 기린봉에서 전주고 교정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와중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가발 장사하던 형을 둔 친구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교를 졸업했다.
지금도 '42'란 숫자를 보면 울컥한다.
새벽에는 신문 배달, 저녁에는 가정교사로 일하며 학비를 댔다고 한다.
하지만 그토록 염원했던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갈 곳은 공직이었다. 그렇게 세무공무원이 됐다.
공무원이 돼서도 살림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동생들을 가르치기엔 공무원 월급은 늘 빠듯했다.
다시 삶의 목표를 바꿨다.
1981년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2년 뒤 세무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배움에 대한 허기는 쉬 가지질 않았다.
1988년 호원대에 입학한 그는 친구들보다 학번이 20년이나 늦었다.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후학들을 돕고자 장학회를 설립하고 싶었다.
그 결심은 2012년 열매를 맺었다.
'거암장학회'를 설립해 작년까지 120여명에게 장학금을 줬다. 자신같이 굶고 공부하는 학생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우석대학교는 이런 공로를 인정해 21일 서하진(70) 거암장학회 이사장에게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인은 '대추 한 알'이란 축시를 보내줬다.
'대추 한 알은 저절로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풍과 천둥, 벼락을 겪고서야 완성된다'는 의미가 담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노력의 대가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는 서 이사장.
그는 "저같이 어렵게 공부한 학생들이 없도록 후학들에게 베푸는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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