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 장재현 감독 "제 전작이 경쟁자…자기 복제는 안돼"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장재현 감독의 영화 '검은 사제들'은 한국판 '엑소시스트'로 불린다. 할리우드 영화 전유물로 여겨진 엑소시즘(구마)을 한국영화에 끌어들인 첫 작품이다. 악령을 퇴치하는 구마 의식을 상당히 디테일하게 묘사해 신선한 충격을 줬고, 2015년 11월 개봉 당시 544만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장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사바하'는 전작의 어두운 기운을 이어받았지만, 결은 전혀 다르다. 오컬트(초현실적인 마술, 악령 등을 다룬 괴기 영화)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형식은 진실을 추적하는 범죄 스릴러에 가깝다. 이 작품은 지난 20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
개봉에 앞서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장 감독은 "제 전작이 가장 큰 경쟁자인 것 같다"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전작과 결이 달라 실망하는 분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기 복제'를 할 수는 없다"며 "지금은 제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배우는 단계"라고 말했다.
'사바하'에는 기독교, 불교의 밀교, 무속신앙, 불교에서 파생된 신흥종교 등 다양한 종교와 신앙이 등장한다.
기독교 신자인 장 감독은 "성경을 보면 마태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가 가장 '시네마틱'하다. 잔혹하면서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며 "그 내용과 불교의 근본 교리를 섞어 이야기를 썼다"고 설명했다.
"기독교에는 악이 정확히 나오는데, 불교에는 악이 없다고 해요. 모든 존재는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이 생(生)하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한다는 '연기설'이 기본 교리죠. 즉 상생을 의미합니다. 영화 속에는 이런 상생과 균형을 깨고 개인의 욕망에 집착하는 포식자와 그 사람을 멸하려는 존재가 등장하죠."
영화는 신흥종교집단 '사슴동산'을 추적하는 박 목사(이정재), 서로 다른 운명을 타고난 16살 된 쌍둥이 자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동차 정비공 나한(박정민), 영월 터널에서 발견된 여중생 사체와 살인 용의자의 죽음 등 여러 인물과 사건이 사슴동산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힌다. 그래서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장 감독은 "호불호가 갈릴 줄은 알았다"면서 "처음 볼 때는 머리를 써야 하지만, 한 번 더 보면 풍부한 감정 등이 마음에 전달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극 중 박 목사는 개인적 아픔을 겪은 뒤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인물로 그려진다. 신을 찾으려 애쓰지만, 마주하는 것은 결국 '악'의 존재다.
장 감독은 "신에 대한 원망과 무기력함을 표현하면서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아울러 "스스로 신이 되려는 욕망을 지닌 사람이 저지른 범죄를 그린 이야기"라며 "결말에서는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사바하'는 캐릭터보다는 이야기 중심의 영화다. 조각조각 퍼즐을 맞추는 듯한 쾌감을 준다. 장 감독은 미국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보스턴글로브의 취재 과정을 그린 영화 '스포트라이트'(2016)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주인공이 없어도 이야기의 힘이 좋았죠. '사바하' 역시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면 편협해질 것 같아 이야기 전체가 주제가 되는 시나리오를 구상했어요."
그는 "전작 때문에 오컬트에 대한 압박감이 컸다"고 털어놓은 뒤 "기괴함이 도드라질수록 현실과 괴리감을 느낄 수 있어 최대한 현실을 반영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사슴동산이란 이름은 붓다가 처음으로 설법한 곳인 '녹야원'(鹿野苑)에서 따왔다.
자칭 '다크월드 덕후(마니아)'인 장 감독은 "앞으로도 종교적인 입장에서 인간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종교를 소재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숙한 화두를 던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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