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와 랩의 쫄깃한 난타전…해외서 '찜'한 힙합듀오 XXX
새 앨범 '세컨드 랭귀지' 발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변주하는 차가운 전자음, 예측 불가능한 혼란한 비트, 그 위를 방황하는 듯한 냉소적인 랩 플로(flow)….
힙합 듀오 XXX(김심야 24·프랭크 26)의 작법은 변화무쌍하다. 랩의 내러티브를 압도하는 비트, 노이즈처럼 뒤섞인 묵직한 소리를 지그재그로 치고 나오는 날렵한 랩은 쫄깃한 난타전 같다.
이들의 시그니처 사운드는 기존 힙합계 아류가 아니란 점에서 쾌감을 준다. 물론, 음원차트 속 말랑한 힙합처럼 친절한 사운드가 아니니 호불호가 갈릴 리스크는 있다.
XXX가 최근 새 정규 앨범 '세컨드 랭귀지'(SECOND LANGUAGE)를 발표했다. 신보는 지난해 11월 낸 첫 정규 앨범 '랭귀지'(LANGUAGE)와 더블 앨범으로 짝을 이룬다.
'랭귀지'란 키워드로 묶인 두 앨범은 언어란 메타포를 통해 예술 분야 창작자로서 회의감을 풀어냈다. "예술이란 분야가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 것"이 더블 앨범을 만든 계기이기도 하다. 최근 마포구 서교동에서 XXX를 만났다.
"예술은 어떤 의도로 만들든 대중이 받아들이기 나름이죠.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이 누군가에겐 그저 화장실 변기로 보일 수 있듯이요. 우리도 의도가 100% 전달되지 않는 것에 힘이 빠진 때가 있었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담고자 음악을 만들면서 랭귀지란 타이틀이 떠올랐어요. 언어도 어떤 말투, 뉘앙스인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 지니까요."(프랭크)
첫 '랭귀지' 앨범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해외 미디어가 먼저 반응했다.
미국 음악웹진 피치포크는 '오늘 발매된 반드시 들어야 할 앨범 7선'에 전설적인 솔 뮤지션 샤카 칸의 앨범과 함께 '세컨드 랭귀지'를 추천했다. 빌보드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신보 소식을 알리며 "프랭크의 불협화음 비트와 분위기 있는 멜로디에 김심야가 사회와 주류 한국 음악 산업에 대한 불만을 독설 적인 랩으로 얹었다"고 소개했다.
이미 해외에서 이들의 음악을 평가한 대목도 K팝 시장의 공식과 시스템에서 빗겨있다는 점. "한국 음악 산업의 전형적이고 화려한 랩 음악의 대안"(피치포크), "한국에서 음악을 만드는 기존 공식과 정반대의 위치"(빌보드), "공장처럼 제조되는 음악 시스템과 맞서 싸우는 느낌"(애플뮤직 비츠원라디오)….
둘은 "요즘 세계적인 인기인 (아이돌) K팝을 만드는 나라에서 온 애들이 다른 음악을 한다는 걸 강조한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세컨드 랭귀지'는 2016년 데뷔 앨범 '교미'(KYOMI)에서 보여준 패기에 찬 공격성은 줄었지만, '랭귀지' 앨범에서 표출한 불만과 화는 온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자신들이 느끼는 음악 시장과 괴리, 현실과 이상의 뒤틀림은 진행형이다.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랭귀지'에선 '위 두 낫 스피크 더 세임 랭귀지'(We do not speak the same language·우린 같은 언어를 말하지 않는다)란 가사가 음성 변조를 거치며 반복된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펀치 라인이다.
김심야는 "이 곡은 우리가 이 시장과 참,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전 앨범 더블 타이틀곡 '수작'과 '간주곡'의 '먹힐 듯 안 먹히는 뽐새는 애물단지', '뭣 같은 한국은 내 음악을 싫어해'란 가사와 결핍의 연결 고리가 있다.
또 다른 타이틀곡 '부지'(Bougie)에서도 칼칼한 화법은 유지된다. 부지는 부르주아를 뜻한다. "부르주아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현실을 '아임 부지'(I'm bougie)라는 반어적인 스웨그로 표현했다. 그러나 현실과 타협하기보다 '품위'를 지키고 '나의 주인'이 되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부르주아요?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도,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으로 향하는 인생이 유지되는 것 아닐까요?"(김심야)
그러나 이들은 외부 환경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에서 그치는 하수는 아니다.
김심야는 "대중을 대하는 사람은 대중의 생각을 발단으로 해야 더 혁신적일 수 있다"며 "'내 마음대로 했으니 새로워'라기 보다 진짜 새로운 것은 사람들이 새롭다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고집도 세고 반골 기질도 있어서 이런 생각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떠올렸다.
두 사람은 8년 전 처음 만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중국으로 가 호주를 거쳐 미국에서 고교를 다닌 김심야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커뮤니케이션과에 합격한 상태에서 한국에 왔을 때다.
"한 힙합사이트에서 자작 녹음 게시판에서 활동하던 크루가 있었는데 너무 들어가고 싶었어요. 잠시 한국에 왔을 때 크루에 들어가니 형이 있었죠."(김심야)
이들이 앞서 다른 멤버(구원찬)와 함께 처음 만든 팀은 3인조 R&B 그룹 돕맨션. 프랭크는 "2014년 제가 모은 돈으로 앨범을 냈는데, 망해서 돈을 다 날렸다"고 웃었다. 그만두는 게 아쉬워 둘이 믹스테이프 'XX'를 만들었고 그마저도 접으려던 차에 지금의 기획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XXX란 팀명도 기획사에 들어가면서 믹스테이프 제목에 X를 하나 더 붙여 지었다.
프로듀서와 래퍼 조합에도 랩에 무게 중심이 쏠리지 않는 균형감은 둘의 시너지다. 프랭크는 밴드·전자 음악을, 김심야는 힙합을 좋아했지만, 지금껏 의견 대립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김심야는 "선입견 상 래퍼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데, 작업 때 프랭크 형 비트의 포텐셜이 커지면서 랩을 많이 해도 비트가 주목받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특정 장르를 추구하진 않아요. 힙합은 열린 장르여서 어떤 장르와 믹스가 돼도 이유가 있는 음악이죠. 우리 음악 방향도 그래요."(프랭크)
힙합 마니아들의 열광에 한정판 음반 2천500장이 하루 만에 동나지만, 아직 국내에선 '나만 듣고 싶은 음악'이다. 바람을 물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1등 할 자신은 없어요. 아직은 저희 삶을 걱정하는 상황이라, 음악적으로 어디까지 올라가야지 하는 포부는 사라졌죠."(프랭크, 김심야)
XXX는 앨범 발매를 기념해 27일~3월 15일 종로구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디자이너 이광호와 협업 전시로, 앨범의 각 트랙과 동일한 제목을 가진 10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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