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비서출신 개혁파 원로의 딸, 왜 부친장례식 보이콧할까
리루이의 딸 "아버지, 당 주도 장례식·혁명공묘 안치 원하지 않았다"
"시진핑의 주석임기 폐지 후 중국 공산당에 대한 희망 포기한 것 같다"
(서울=연합뉴스) 정재용 기자 = 마오쩌둥(毛澤東) 비서 출신이면서도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비판해온 개혁파 원로인 고(故) 리루이(李銳)의 딸 리난양(李南央)이 부친의 장례식 참석을 보이콧하고 있다.
부친 리루이가 생전에 고향의 부모님 옆에 묻히기를 원했는데 중국 공산당이 부친의 뜻에 반해 당 주도로 장례식을 치르고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革命公墓)에 안치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미국에 머무는 리루이의 딸 리난양은 이런 이유로 부친 장례식 불참의 뜻을 밝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8일 보도했다.
리난양에 따르면 리루이는 20일 공산당 주도의 장례식을 거쳐 바바오산 혁명공묘에 안치될 예정이다.
베이징 시내 외곽에 위치한 바바오산 혁명공묘는 중국 공산당 원로들이 주로 안치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산당 주도의 장례식은 당에 대한 신뢰를 포기했던 부친의 뜻이 결코 아니라고 리난양은 전했다.
리난양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2008년과 작년 4월 두 차례 리루이에게 장례와 묘지 문제에 대해 의향을 물었다고 밝혔다.
리난양은 "나는 아버지에게 똑같은 질문을 드렸다"면서 "'바바오산 혁명공묘에 묻히길 원하세요' '공식적인 장례식을 원하세요' '아버지의 육신에 중국 공산당의 깃발이 덮이기를 원하세요'라고 여쭤봤다"고 말했다.
그러자 리루이는 오랫동안 생각을 한 뒤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 고향으로 돌아가 내 부모님 곁에 묻혀야 한다. 나는 일찍 고향을 떠나서 어머니를 돌보지 못했다."
관에 중국 공산당의 깃발이 드리워지길 원하느냐고 거듭 묻자 리루이는 "붉은색은 나쁜 색이다. 너도 TV에서 보지 않았니? 이제 모든 것이 붉은색, 붉은색, 붉은색이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학자 겸 정치평론가인 장리판(章立凡)은 "리루이는 중국 집권당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이해하고 있었다. 당내 인사로서 그는 당의 역사, 현재 상황을 알고, 당의 미래를 봤다"고 말했다.
장리판은 그러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리루이는 당을 포기하고 당에 대해 더 희망을 갖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왜 그가 공식적인 장례식과 당의 깃발, 바오바오산 혁명공묘를 원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한다"고 지적했다.
리루이는 시 주석이 작년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헌법 개정을 할 때 중국 공산당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것 같다고 리난양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수년간 폐암으로 투병하던 리루이는 지난 16일 장기부전 증세로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1세의 나이다.
가디언은 그의 사망에 대해 "사회주의 이념에 헌신하기 위해 공산당에 입당해 개혁을 추진해온 혁명세대의 마지막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리루이는 마오쩌둥의 비서를 지냈으면서도 평생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중국의 정치개혁을 촉구해온 개혁파 원로이자 지식인이었다.
특히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작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폐지하면서 '종신 집권'의 가능성을 열어두자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1917년 중국 남부 후난(湖南)성에서 태어난 리루이는 고교 시절부터 지역 군벌에 저항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우한(武漢)대 기계공학과 재학 중엔 공산당이 주도하는 반일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37년 옌안(延安)에서 마오쩌둥이 이끌던 공산당에 입당한 뒤 1958년엔 마오쩌둥의 개인 비서가 됐다.
하지만 그는 마오쩌둥이 6천만명 가까운 아사자를 낳은 '대약진운동'을 벌이자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다 당적을 박탈당하고 노동교화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이후 1966년 '문화대혁명' 때는 악명 높은 친청(秦城) 교도소에 수감돼 9년 가까이 독방 생활을 하기도 했다.
마오쩌둥 사후인 1978년 복권돼 중앙조직부 상무부부장 등을 지냈으며, 사망 때까지 당적을 유지했다.
그는 1984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논문, 저서, 인터뷰 등을 통해 입헌주의에 대해 신념을 드러내면서 중국 공산당에 대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포함해 역사를 직시하고 개혁할 것을 끊임없이 촉구했다.
톈안먼 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반대하다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의 복권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1997년부터는 공산당 대회 때마다 당 지도자들에게 유럽식 사회주의 정당으로의 변신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2017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당과 인간성이 충돌할 때마다 나는 인간성을 옹호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2013년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는 시 주석의 통치 슬로건인 '중국몽'(中國夢)'을 빗대 "나의 중국몽은 입헌지배에 대한 꿈"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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