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동 성 학대 '무관용 방침' 행동으로 옮겨야"
피해자단체, 교황청 '아동 성 학대 방지 회의' 앞두고 기자회견
교황청 관계자 "이번 회의, 아동보호 노력의 '전환점' 될 것"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사제에 의한 아동 성 학대 문제로 가톨릭의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오는 21∼24일 바티칸에서 열릴 예정인 교황청의 관련 회의를 앞두고, 피해자 단체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아동 성 학대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실행할 것을 촉구했다.
사제에 의한 성 학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사제 성학대 그만'(ECA)은 18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이래 아동 성 학대에 대한 무관용을 천명해 왔다"며 "이제 그 약속을 말로만 그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때"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아동 성 학대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으나, 그동안 성 추문에 연루된 사제를 처벌하는 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단체의 창립 회원인 피터 이셀리는 "'무관용' 정책이란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제들뿐 아니라 그들의 죄를 은폐한 주교나 추기경들로부터 역시 성직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직접 아동 성 학대를 저지른 사제들은 물론 이들의 죄를 감추고, 눈감아 준 고위 성직자들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조치가 있어야만 아이들을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 학대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에 미국을 비롯해 칠레, 호주, 독일 등 세계 주요 지역에서 성직자들이 과거에 아동을 상대로 저지른 성 학대 행위가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며, 가톨릭 교회에 대한 신뢰가 급락하자 해결책 마련을 위해 각국 가톨릭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주교회의 의장들이 모이는 초유의 아동 성 학대 예방 회의를 소집했다.
114개국 주교회의 의장과 수녀회 대표 등 약 190명의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가톨릭 교회를 좀먹고 있는 아동 성 학대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는 21일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막이 올라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을 끝으로 폐막한다.
교황청은 개막을 사흘 앞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회의의 의미와 전망 등을 설명했다.
알레산드로 지소티 교황청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이번 회의를 계기로 가톨릭 교회는 성직자들에 의한 아동 성 학대라는 '괴물'에 맞설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우리가 진정으로 이 괴물을 물리치길 원한다면, 모두가 이 괴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의 조직위원 중 한 명인 미국 출신의 블레이스 쿠피치 추기경은 "이번 회의는 아동 보호를 위한 교회의 노력에 있어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관련자들이 책임감을 갖도록, 또한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청내 성 추문 조사 전문가인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는 "투명성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열쇠'"라며 "과거에 교회가 (아동 성 학대에 대해)침묵하고, 부정한 것이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를 통해 아동 성 학대 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이 도출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달 "이번 회의로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성 학대 자체를 중단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번 회의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경계한 바 있다.
한편, 시클루나 대주교를 비롯한 이번 회의의 조직위원 4명은 회의 개막 하루 전인 오는 20일 사제들로부터 성 학대를 당한 피해자 10여 명을 만나 이들의 의견을 청취해 교황을 비롯한 회의 참석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교황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주교회의 의장들에게 교황청에 오기 전에 각자의 나라에 존재하는 아동 성 학대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유럽과 미국과 중남미 등에서는 성직자들에 의한 아동 성 학대 사건들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며 사회적인 이목이 쏠리고 있으나,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상당 지역에서는 피해자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 문화 등으로 인해 이 문제가 아직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지 않은 실정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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