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前대통령 처제 래지윌 85세로 별세…'사교계 꽃' 삶 마감
문화·예술계 명사들과 교류…언니 재클린과는 미묘한 '경쟁 관계'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여동생 리 래지윌이 85세를 일기로 숨졌다.
로이터·AFP 통신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처제이자 한때 '폴란드의 공주'였던 래지윌이 15일(현지시간) 미 뉴욕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16일 보도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래지윌은 사교계의 명사였다. 배우이자 인테리어 장식가, 작가, 패션 홍보 임원, TV 진행자 같은 문화·예술 영역의 다양한 직함을 달고 화려한 삶을 살았다.
로이터는 "래지윌의 세계는 상류사회, 예술계 명사, 패션계의 거물 등 여성 명사들과 부유하고 저명한 남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라고 평가했다.
AFP도 "래지윌은 미모와 스타일 감각은 물론 앤디 워홀, 트루먼 커포티를 포함한 명사 친구들로도 유명하다"고 전했다.
미 팝아트의 거장 워홀, 소설가 겸 영화 각본가인 커포티, 러시아 무용수 루돌프 누레예프 등과 가깝게 교류했고, 패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브랜드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수년 동안 국제적인 베스트 드레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녀는 캐럴라인 리 부비어란 이름으로 1933년 뉴욕주 사우샘프턴에서 태어났다. 래지윌이란 이름은 망명한 폴란드 왕자였던 두 번째 남편 스타니슬라브 래지윌의 성에서 따온 것이다. 이 결혼을 통해 그녀는 실제 공주의 삶을 살았다.
언니인 재클린과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밑바닥에는 자매간에 경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전기작가는 이들 자매의 아버지인 존 부비어가 언니인 재클린을 더 좋아했고 래지윌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고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래지윌은 "우리가 경쟁자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우리는 무척 가깝고 언제나 그래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언니의 그늘에 가려 살지도 않았다. 래지윌 자신도 "나는 누구의 여동생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케네디가 대통령이 됐을 당시 래지윌은 런던에 살고 있었지만 '캐멀롯 백악관'(아서왕이 살았다는 전설 속 궁전인 캐멀롯에 빗대 케네디 일가가 살던 화려한 시절의 백악관을 가리키는 표현)의 전성기를 만끽하며 이를 지켜본 목격자이기도 했다.
래지윌은 "그 몇 년간이 화려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아메리카스 컵(국제 요트대회)의 경주를 위해 대통령 요트에 탔던 일이나 떠들썩한 백악관 파티. 너무도 기막히게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케네디 사후에도 두 자매는 크리스마스 때를 포함해 백악관의 단골손님이었다. 또 1950년대 함께 다닌 유럽 여행을 정리해 '어떤 특별한 여름'(One special summer)이란 책을 함께 펴내기도 했고, 재클린은 동생 이름을 따 첫딸에게 캐럴라인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래지윌은 언니 재클린이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재혼하기 전에 사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오나시스에 대해 "정력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잔인하다고 해야겠지만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래지윌은 모두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다. 첫 남편은 하퍼앤드브라더스 출판사 사장의 아들인 마이클 캔필드였고 마지막 부부의 연은 영화 '풋루스'의 감독이자 안무가인 허버트 로스와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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