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 앞둔 日오키나와 헤노코기지 앞…아베정권에 성난 민심
'기지이전'공사' 찬반투표 고지 후 첫 주말 시위
기지 앞서 팻말 시위…해상에선 선박 동원 항의
0.6% 면적 오키나와에 70% 美기지 '집중'…"아베 정권, 용서못해"
(나고시 [일본 오키나와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법치(法治)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무시하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16일 일본 남단 오키나와(沖繩)현의 나고(名護)시의 헤노코(邊野古) 기지 건설 예정지 앞.
"바다를 메우지 말라", "공사를 중지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돌려달라" 등의 팻말을 들고 모여든 시민들의 목소리는 성이 나 있었다.
이날은 오키나와현이 14일 미군기지에 대한 주민 찬반투표를 고지한 뒤 처음 맞은 주말 토요일이며, 아베 정권이 오키나와의 주민투표 결과를 무시하겠다고 공표한 지 이틀 뒤다.
오키나와현은 오는 24일 일본 정부가 강행하고 있지만, 오키나와의 주민들은 반대하고 있는 헤노코 기지 건설의 매립 공사에 대해 찬반을 묻는 투표를 한다.
헤노코 기지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 중 가장 뜨거운 감자로, 중앙 정부와 오키나와현 지방정부가 기지 건설과 반대를 놓고 소송전을 펼치며 맞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오키나와현 기노완(宜野彎)시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으로 불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이전하기로 하면서 이전지를 헤노코로 정했다.
후텐마 비행장이 사라지는 것이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새기지 역시 주민 안전에 위협이 될 것이며 산호초 등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오키나와현은 기지를 아예 오키나와 밖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작년 12월 해안부 매립공사를 시작하며 기지 이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주민투표는 다마키 데니(玉城 デニ-·59) 현지사의 승부수다. 그는 작년 9월 강경파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전 지사의 사망 후 치러진 선거에서 헤노코 기지 이전 반대의 기치를 내걸고 현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
다마키 지사에 힘을 실어준 민의는 이번 주민투표에서도 여전해 보인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회사원 여성 도미무라 씨는 "일본 정부가 '배려 예산' 지원이라는 꼼수를 쓰며 기지 찬성파를 늘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기지가 없어지면 관광 수입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며 "기지가 이전된 뒤 대형 소핑센터가 들어서 대규모 고용이 창출된 사례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키나와는 면적에서 일본 전체의 1%도 안되지만(0.6%) 미군기지의 70%를 오키나와가 떠안고 있다"며 "오키나와 주민들은 현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는 아베 정권과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호소했다.
헤노코 기지의 정문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100여명이었다. 나하(那覇) 등 주요 도시의 번화가 곳곳에서는 주민투표를 앞두고 대규모 선전전이 펼쳐졌다.
기지이전 반대파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면 어김없이 달려가 선전물을 나눠주고 손팻말을 흔들었다.
헤노코 기지 매립지 주변 해상에서는 소형 선박과 카누 40여척을 동원한 '해상 시위'가 펼쳐지기도 했고, 나하의 오키나와현 청사 앞에서도 기지 이전 반대파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바다 위에 모인 사람들은 "새 기지 필요 없다", "기지 'No'(반대)에 '0'(찬성)를" 등이 적힌 손팻말을 흔들면서 기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부표를 사이에 두고 해상보안청의 고무보트와 대치했다.
'기지이전 반대파'의 반발은 지난 14일 일본 정부가 주민투표의 결과를 무시하겠다는 생각을 밝히면서 더 거세지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주민투표 결과가 어떻든 정부는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우에마 요시코(74)씨는 "일본 정부는 압도적으로 기지 이전 반대 의견이 많은 결과가 나올 것이 무서워 하고 있다"며 "그래서 벌써 투표 결과를 무시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베 정권을 용서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미군 기지가 몰려있는 오키나와 상황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다"며 "현지사 선거 등 지자체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부분 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사람이 당선되고 있다. 이렇게 민의를 보여줘도 아베 정권은 눈도 끔쩍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서 사실 일본 정부가 이를 따를 의무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일본 정부가 주민투표 결과를 어느 정도 수용한 적도 있다.
오키나와에서는 지난 1996년 미군 기지협정 개정과 기지 축소 여부를 묻는 '현민투표'가 실시됐고 89%가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수상이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는 투표 결과와 관련해 "투표까지 시키는 사태가 돼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오키나와에 50억엔(약 511억원)의 특별보조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출범 후 줄기차게 기지 이전을 강행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스가 장관의 말대로 이를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여당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기지반대파의 '장난'으로 투표의 선택지에 '찬성'과 '반대' 외에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애매한 항목이 추가된 것도 기지반대파의 압승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오키나와현은 일부 지자체들이 주민투표 불참 방침을 밝히자 이들을 투표에 끌어들이기 이런 고육책을 썼다.
기지 정문에서 만난 남성은 "(오키나와 출신이 아닌) 본토 사람으로 기지 이전 계획에 항의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오키나와에 기지가 밀집된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군이 일본 땅에서 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에 대한 '진흥비' 예산을 삭감이며 재정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는 일부 기지 찬성파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택시 운전사 요미야 씨는 "미군이 내게 해를 끼친 적은 없어서 나는 미군기지에 찬성한다"며 "기지가 있는 곳의 주민들은 정부 지원금 덕에 세금이 싸지는 혜택이 있다"고 했다.
그는 "관광업으로만 오키나와를 지탱할 수 없다"며 "후텐마 비행장을 지금처럼 위험한 상태로 놔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헤노코로 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