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보다 달콤한 노래"…이문세, 이영훈 11주기 공연
소극장에 팬 160명 초대…밸런타인데이에 떠난 이영훈의 숨은 명곡 선사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노래가 단명하는 시대라 한다. 3~4분짜리 완곡을 듣는 인내심조차 부족한 이때, 30여년을 담금질한 노래의 단단함은 가늠하기 어렵다. 여러 세대와 포옹한 명곡은 각기 다르게 전이돼 수만 가지 표정으로 남아서다. 때론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고, 때론 절망을 건져 올린다. 되새길수록 공감의 풍미 또한 깊어지니 세월을 버텨내는 것이다.
작곡가 이영훈이 만들고 이문세가 부른 '소녀'(3집·1985) 첫 소절이 흐를 때 든 생각이다.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소녀' 중)
"와~" 관객의 자동반사 탄성은 오랜 시간 체화한 소리였다.
지난 14일 용산구 현대카드언더스테이지에서 이영훈 11주기 추모 공연 '열한 번째 발렌타인데이 친구 이영훈'이 열렸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10주기 공연을 성대하게 연 이문세가 고인을 그리는 160명을 무료로 초대한 자리였다.
소박한 무대를 위해 이문세와 이영훈의 팬클럽 '마굿간' 회원들은 공연장에 좌석을 깔고, 티켓을 나눠주며 손을 보탰다. 책갈피 모양 티켓에는 피아노 치는 이영훈과 노래하는 이문세가 삽화로 담겼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저는 초콜릿보다 더 달콤한 (이)영훈 씨 노래를 부릅니다."
11년 전 밸런타인데이는 이문세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008년 이날 이영훈이 대장암으로 곁을 떠났다. 고인은 그에게 "궁합이 잘 맞는 음악 파트너이자 가장 가깝게 지낸 친구"였다.
작년보다 무대는 작아졌지만 그리움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문세의 그윽한 목소리와 단출한 5인조 밴드(기타, 키보드, 피아노, 퍼커션, 바이올린)의 앙상블은 이영훈의 음악 심상을 오롯이 들여다보게 했다.
이날 '붉은 노을' 같은 이문세 공연의 고정 레퍼토리는 없었다. 평소 무대에서 잘 부르지 않던, 둘의 추억을 간직한 숨은 명곡 11곡이 차려졌다. 그들의 청춘, 그저 음악이 좋아 작업에 빨려들던 시절의 뒷이야기가 노래 따라 흘렀다.
"아마 공연에서는 처음 부르는 노래가 아닐까…."
이문세는 5집(1988) 끝곡인 '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을 골랐다. 가수 이광조가 1987년 앨범에 먼저 실은 노래다. 5집을 작업하던 이영훈이 피아노 앞에 앉아 "이광조 씨에게 준 노래인데 안 들어봤죠?"라며 들려줬다고 한다. "지금도 이 노래가 왜 히트 안 했는지 모르겠어요. 둘이 너무 좋아한 노래거든요." 그는 매번 선곡에서 밀린 이 곡을 불러 후련하다고 했다.
같은 소속사 여고생 신인 김윤희와 듀엣한 12집(1999)의 '슬픈 사랑의 노래'도 역시 빛을 보지 못한 노래다. 이소라와 듀엣했던 곡으로 여전히 그의 마음속 "페이보릿 송"이다.
평생의 노래를 선물해준 이영훈과의 첫 만남은 1984년, 둘은 창창한 20대였다. 이문세는 앨범 두 장을 내고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세상의 관심을 받던 차였다. 이영훈은 미술을 전공하고 연극 음악을 하고 있었다. "음악적으로도 평가받고 싶은" 욕심에 이문세가 간절하게 음악 파트너를 찾아다닐 때, 신촌블루스 엄인호가 소개해준 이가 이영훈이다. 처음부터 "찌릿찌릿 통했던" 둘을 묶어준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1985)는 그렇게 태어났다. 한살 터울 '황금 콤비'의 출발이자 '한국형 팝 발라드' 개척의 첫발이었다.
"'굉장한 실력파구나' 했죠. 둘이 정말 거지꼴을 하고 연습실에 처박혀 몇 날 며칠 라면을 끓여 먹으며 제목, 가사 하나를 가지고 밤을 불태웠던 시절이 지금도 생각나네요."
3집 히트의 또 다른 공신은 전설의 명 DJ 고(故) 이종환이었다. 이종환은 MBC 라디오에서 '별밤'이 같은 시간대 경쟁 프로였지만 '밤의 디스크쇼' 공개 방송 보조 DJ로 이문세를 세웠다. "3집이 나오기 전 공개 방송에서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불렀는데 그때 소녀들의 함성을 잊을 수 없어요. 하늘에 계신 두 분께 감사드려요."
옛 기억을 상기한 이문세의 표정은 가까운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문세도 노래를 부르던 중, 숨죽여 눈물 흘리는 관객의 눈빛을 일일이 읽었다. 이 자리가 애틋했던 그는 한곡 한곡 노래를 아껴 불렀다.
관객과 격의 없는 대화도 푸근한 아날로그 감성을 더했다. 의사가 되려다가 이문세 노래에 빠져 방송사 PD가 된 사연에 웃고, 이문세 노래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이영훈이 영면한 납골당에 잠든 사연에 모두 저릿해졌다. 이영훈의 부인 김은옥 씨도 이 모습을 뭉클하게 지켜봤다.
3집의 '빗속에서'로 '떼창'을 끌어낸 이문세는 "영훈 씨의 따뜻함이 노래에 남아있고,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저는 너무 행복한 가수"라고 말했다.
"어딘가에서도 자신의 멜로디를 들으며 흐뭇해할 영훈 씨 잘 계세요. 언젠가 우리가 만나니, 터를 잘 닦아놓길 바랍니다."
앙코르곡으로 7집의 '옛사랑'(1991)을 부르던 그는 코끝이 시큰해진 듯 보였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옛사랑' 중)
공연을 마친 그는 출구에 서서 귀가하는 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줬다. 팬들이 들려주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로 악수회는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즉흥 이벤트를 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했고, 너무 고마워서…."
지난해 10월 16집을 내고 12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공연까지 달린 그는 올해 안식년을 갖는다. "이완과 집중의 시기 중 이완의 시기"라고 했다.
"여행을 다닐 거예요. 최근에도 한 달간 산악회 회원 서너 명과 뉴질랜드와 호주로 야영을 다녀왔죠. 다닐 곳이 너무 많아요. '나는 자연인이다'가 아니라 '나는 자연을 찾는다'죠."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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