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권리금만 1억인데 안전대책은?…위험 노출된 홍대 상권
무허가 가건물 상가 우후죽순…"불나면 보상은 상인 몫"
(서울=연합뉴스) 황예림 인턴기자 = "화재 나면 큰일이죠. 연초에 불 난 데도 건물끼리 붙어 있어서 확 번진 거잖아요"
지난달 17일 서울 홍익대 부근 번화가 거리에 있는 2평 남짓한 휴대전화 액세서리 가게. 여기서 만난 박상훈(30)씨는 이런 얘기를 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서 있는 가게는 정식 건물이 아니라 합판으로 지어진 가건물. 박씨는 가게 벽을 툭툭 치며 "이게 다 목재거든요. 무허가 건물이어서 대충 만든 거죠. 여기 건물들 거의 다 이렇게 지어져 있어요"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 지역 중 유동인구 1위, 하루 10만명이 넘게 오가는 홍대 거리는 서울의 핵심 상권이다. 2∼3평 규모의 작은 가게도 권리금만 1억원에 보증금은 2천만∼3천만원, 월세는 300만∼500만원에 이른다. 한마디로 금싸라기 땅. 그래서 건물 사이의 공간이나 주차장, 공터였던 자리에 무허가로 가건물을 짓고 옷가게나 액세서리 가게 자리로 세를 놓는 임대인이 많다.
상인들은 무허가 건물이라고 해도 비싼 권리금과 임대료를 내고 들어가지만 화재 등 안전사고 대비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건물이 다닥다닥 밀집한 곳에 목재 등 화재에 취약한 자재로 소방법을 준수하지 않고 대충 지어놓은 가건물이 많아서 한번 불이 나면 대형화재로 번질 위험이 크다. 정식 건물이라면 소방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스프링클러가 있겠지만 무허가 건물에선 언감생심이다. 소화기 등 기본적인 소방장비조차 구비하지 않은 곳도 상당수. 실제로 지난달 1일 홍대 번화가 식당에서 시작된 불이 인근 가게로 옮겨붙어 점포 13곳이 화재 피해를 보기도 했다.
◇ 가게 불타면 책임은 '월세 내는 상인'이…
마포구청에 따르면 홍대 상권 중 옷가게와 액세서리 가게가 늘어선 '서교동 365' 거리는 건물의 절반 이상이 무허가 건물이다. 원칙적으로 무허가 건물은 화재 보험의 가입 대상이 아니다. 건축물대장에 등재돼 있지 않은 건물은 불에 잘 타는 저렴한 자재로 지어진 경우가 많아서 화재 발생 위험이 큰 데다 소유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서 보험금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허가 건물에 들어선 가게에서 불이 나면 누가 책임을 질까. 화재 원인이 특정되지 않는 경우라면 판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처음 화재가 시작된 장소의 상인'이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 건물의 관리 책임이 임차인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아무런 하자 없이 관리를 잘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임차인 혼자 책임을 뒤집어쓰는 구조다.
상인인 임차인이 혼자 책임을 모두 지게 되는 구조라 실제로 불이 났을 때 인근 점포 등의 화재 피해자들 역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관할 마포구청은 홍대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무허가 건물이나 불법 증축 건물에 자진 정비 명령을 내리고 지키지 않으면 건물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1년에 1백만원 정도인 과태료를 내는 게 소방설비를 갖추는 것보다 싸다고 판단하고 화재 대비책을 세우지 않는 건물주가 더 많은 실정이다. 과태료마저 월세에 포함해 상인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인근 부동산 업체들은 귀띔했다.
◇ "전통시장 화재공제 같은게 있다면…"
민간 보험회사는 보험 가입신청을 받아주지 않거나 비싼 보험료를 요구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안전사고 피해에 노출된 홍대 상권 등의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대 일대의 '서교동 365' 거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전통시장에는 이미 대책이 마련돼 있다. '전통시장 화재공제'는 화재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만든 보험 상품이다. 무허가 건물이라도 소재지가 확인되고 사업자등록이 돼 있다면 전통시장 상인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정부가 사업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어서 보험료도 민간 회사의 절반 수준으로 저렴하다.
한국손해사정사회 신재명씨는 "무허가 건물에서 장사한다고 해서 불법 운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엄연히 사업자등록증도 있고 국가에 세금도 내는 소상공인들"이라며 "생계와 직결된 문제인 만큼 민간 보험사에 맡길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화재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사업장도 기본적인 소방기기를 구비하도록 의무 설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관련 법을 개정해 용도와 면적으로 소방시설 설치 기준을 정하는 현행 분류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화재사고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소방당국이 적극적인 화재 예방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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