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형제의 난'…총리동생 신당 지지 파장
신당창당 선언 전 대통령과 조찬회동…"신당창당 좋은 일"
"국부 리콴유 '3대' 후계자 둘러싼 부친간 대립"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1956년 독립 이래 싱가포르 정·재계를 사실상 주물러온 리콴유(李光耀·1923∼2015) 초대 총리 집안의 갈등이 정치에도 파급되기 시작했다.
리콴유 총리의 차남인 셴양(李顯陽·61)씨가 장남이자 현직 총리인 셴룽(李顯龍·67)씨를 비판하면서 새로 탄생할 야당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어서다. 형제간 갈등은 각자의 아들이자 리콴유 초대 총리 손자간의 '3대 후계자'를 둘러싼 투쟁인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1일 전했다.
이달 2일 아침. 음력 설을 앞두고 인파로 붐비는 싱가포르의 대표적 서민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2명의 남성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싱가포르 여당인 인민행동당(PAP) 의원으로 제7대 대통령을 지낸 탄첸보크(陳慶炎. 78)와 셴양씨 였다. 두사람은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고만 말했지만 이들의 회동 사진은 SNS를 통해 곧바로 확산했다.
탄 전 의원은 2006년까지 4반세기 동안 여당 의원을 지내 지금도 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와 셴양씨의 회동이 화제가 된 것은 탄 전 의원이 1월 중순 연내로 예상되는 총선거에 앞서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진짜 민주주의 싱가포르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셴양씨는 2017년 총리이자 형인 셴룽씨 부부가 아들 홍이(31)를 후계자로 세우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탄 전 의원의 신당 창당계획에 대해 "좋은 일이다. (탄은) 어울리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워 형제간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악화했다. 싱가포르 언론은 구정 전 두사람의 회동이 셴양씨가 신당지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싱가포르는 독립 이래 리콴유 초대 총리가 결성한 인민행동당이 정권을 유지해 왔다. 선거제도도 여당에 유리하게 돼 있어 야당은 맞설 수 없는 상황이지만 셴양씨가 신당를 지지함으로써 일정한 정치세력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비르비어 신 싱가포르 국립대학 교수는 "신당이 신선한 야당으로 지지를 얻으면 폭넓은 국민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게 될지 모른다"고 기대했디.
리콴유 패밀리는 싱가포르 정치와 경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셴룽 총리의 부인 호칭(何晶)은 싱가포르 정부계 펀드 테마세크 CEO다. 이 펀드는 싱가포르항공과 최대 통신사인 싱텔(singtel) 등의 주요 기업을 산하에 두고 있다. 셴양씨도 싱텔 CEO 등을 역임했다.
싱가포르 정계도 리콴유 패밀리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독립 당시부터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낸 리콴유의 뒤를 이은 고촉통(吳作棟) 전 총리는 "셴룽에게 자리를 이어주기 위한 중계자"로 불렸다.
2004년 총리로 취임한 셴룽 총리는 곧 은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후계자로는 작년 말 여당의 제1사무총장보에 취임한 헹 스위 킷(57, 중국식 이름 왕루이제 王瑞杰)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한 저명한 저널리스트가 "헹은 (3대 후계자의) 교육 담당자"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현지 언론은 3대 후계자로 셴룽 현 총리의 아들 홍이를 거론하고 있다. 그는 정부 장학금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후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셴양씨의 아들인 셴우(34)는 미국 하버드대학 조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홍이와 셴우는 2015년 리콴유 초대 총리 장례식에서 각각 조사를 읽어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정계진출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셴룽 총리와 동생 셴양씨가 대립하는 배경에는 3대 후계자 옹립을 둘러싼 아버지끼리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하는 언론도 있다.
리 패밀리의 '세습'에 대해서는 국민 여론이 엇갈린다. 현지 미디어 등이 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리 패밀리 3대의 정계 입문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각각 50%로 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hy5018@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