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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눈물로 아들 보낸 김용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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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눈물로 아들 보낸 김용균 어머니
서울 도심 가로지른 추모 행진…참가자들 "내가 김용균이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마지막으로 너를 보내는 날이구나. 이 엄마는 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가는 거니, 아들아."
9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광장. 지난해 12월 11일 스물넷의 나이로 충남 태안화력에서 일하던 중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의 영결식 말미 단상에 올라 미리 준비한 문장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사랑하는 내 아들아,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엄마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구나"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그는 "엄마 아빠가 너에게로 가게 될 때 두 팔 벌려 꼭 안아주고 위로해줄게"라며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발언을 마무리하고 오열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민주사회장'으로 치른 김용균 씨의 장례 절차는 이날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장례를 위해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구성한 '청년 비정규직 고(故)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유족을 도와 이날 새벽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고인이 사고를 당한 태안화력에서 노제를 지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노제와 영결식 내내 어머니 김씨는 비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노제 행렬이 시작한 흥국생명 남대문지점부터 영결식이 열린 광화문광장까지 1㎞가량을 영구차 뒤에서 묵묵히 행진한 김씨는 영결식장에서 여러 차례 눈물을 쏟았다.
열악한 방송노동 환경 문제를 제기하다 2016년 세상을 떠난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 씨가 조사(弔詞)에서 "아들이 없는 세상은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 슬픔에 울먹이자 이를 지켜보던 김미숙 씨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자신의 발언 순서가 돌아와 단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뒤에도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옆자리를 지킨 시민사회 원로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김씨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고인의 아버지 김해기 씨도 아내와 함께 아들을 추모하는 발언을 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 이유로 단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날 노제와 영결식에는 장례위원회 추산 총 2천500명가량이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8.6도를 기록하는 등 추운 날씨였지만 많은 이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김용균 씨가 숨진 뒤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김씨 모습을 본뜬 조형물이 노제 행렬의 선두를 지켰고 대형 영정사진도 뒤를 따랐다.
50장의 검은 만장(輓章)에는 '김용균이라는 빛',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아 어서 오라', '노동해방 세상에서 영면하소서', '우리가 김용균이다' 등의 문구가 담겼다. 참가자들은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적힌 검은 머리띠를 둘렀다.
참가자들은 또 영결식에서 사회자인 이태의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의 선창에 맞춰 "우리가 김용균이다", "내가 김용균이다" 등 구호를 외쳤다.
노제와 영결식은 2시간 넘게 진행됐다. 오전 11시께 시작된 노제는 곧바로 영결식으로 이어졌고, 유족과 영구차는 오후 1시 30분께 경기 고양 벽제서울시립승화원을 향해 떠났다.
김용균 씨의 장례위원회는 백기완 소장 등 136명이 고문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과 전명선 4·16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94명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jae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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