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일에 2개섬 반환하려 했다"…미 영향력 견제 겨냥
NHK, 당시 비밀문서 인용 '군사기지 안두는 조건' 양보안 마련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일본과 러시아가 평화조약협상의 토대로 삼기로 한 1956년 양국 공동선언과 관련, 당시 소련연방 지도부가 평화협상을 서두를 필요에 쫓겨 하보마이(齒舞), 시코탄(色丹) 2개섬을 일본에 돌려준다는 양보안을 준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NHK가 자체 입수한 옛 소련의 비밀문서를 인용해 7일 보도했다.
NHK는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지시마<千島>열도) 4개섬 중 2곳을 돌려주는 것으로 영토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도 이 문서에 기초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옛 소련은 1955년 6월 런던에서 국교정상화 협상을 시작해 이듬해 평화조약을 맺은 후 하보마이와 시코탄섬을 일본에 돌려준다고 명기한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2개섬 반환은 소련 측 협상책임자이던 야코프 알렉산드로비치 말리크 당시 영국주재 대사가 비공식석상에서 불쑥 내놓은 제안으로 의도가 밝혀지지 않았었다.
NHK가 입수한 당시 소련 공산당 지도부 비밀문서는 협상이 시작되기 직전인 6월2일 작성됐다.
문서에는 "양국관계가 양호한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경우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넘겨주는 협상을 시작하는게 가능하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는 소련 측이 "외국군 기지를 두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일찍부터 2개섬 반환을 최대의 양보안으로 협상에 임한다는 방침을 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방침을 굳힌 이유로는 "일본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입장을 약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경제적, 정치적 독립을 바라는 일본의 희망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냉전체제에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협상 진전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인 시모토마이 노부오(下斗米伸夫) 호세이(法政)대학 교수는 "하보마이·시코탄섬 이야기가 나오는 과정이 처음 밝혀진 것"이라고 평가하고 "2개섬을 돌려주는 양보를 통해 아시아에서의 소련의 입장을 강화, 미국 견제를 강화하려한 의도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 정권의 협상태도도 당시 문서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협상이 시작된 1955년 6월을 한달여 앞두고 5월에 나온 소련 공산당 지도부의 지령문서 초안에는 "협상의 목적은 상호 대사관을 설치하는 것"이며 영토문제는 "검토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런던에서 일본과 협상을 시작하기 직전인 6월2일자 문서에서는 공산당 지도부의 방침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영토문제에 대해 "일본이 홋카이도(北海道)와 인접한 하보마이, 시코탄섬의 반환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소련은 특정한 조건하에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힐 수 있다. 양국관계가 양호한 방향으로 발전할 경우 하보마이군도와 시코탄 반환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후 1955년7월4일자 '하보마이군도와 시코탄에 관한 지령 초안'이라는 제목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에는 말리크 전권대사에 대한 구체적 지시로 "섬을 양도한 이후 군사기지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의무를 부과한다면 일본 측에 하보아미군도와 시코탄을 넘겨주는데 합의할 용의가 있다고 전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협상에서는 쿠릴 4개섬을 포함한 영토문제도 논의됐으나 일본 측이 "역사적으로 일본영토"라며 반환을 요구한 데 대해 소련은 "2차대전의 결과 소련에 귀속돼 끝난 문제"라고 맞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한편 당시 일본 측 협상 책임자였던 마쓰모토 준이치(松本俊一) 일본 특명전권대사는 회고록에서 말리크 대사가 갑자기 "다른 문제가 모두 정리되면" 2개섬 을 반환해도 좋다고 말해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지만 속으로 대단히 기뻤다"고 밝혔다.
이후 일본이 구나시리(<國後. 러시아명 쿠나시르)와 에토로후(拓捉. 러시아명 이투룹)를 포함한 4개섬 반환을 요구하자 소련 측도 강경한 태도로 돌아서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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