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베를린]'일본놈', 13년만에 위안부 할머니들 곁으로…"이번엔 끝까지"
베를린의 일본인 사진작가 야지마, '나눔의 집'으로 복귀
위안부 할머니 사진전…"김복동 할머니 곧 볼 수 있었는데…"
[※편집자 주 = 여덟 번째 이야기. 독일 수도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힙(hip)'한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의 유산을 간직한 회색도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로 인해 자유분방한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최근엔 유럽의 새로운 IT와 정치 중심지로도 주목받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특색 탓인지 베를린의 전시·공연은 사회·정치·경제적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힙베를린'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창(窓)으로 삼아 사회적 문제를 바라봅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곱게 한복을 차려입으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이었지만, 온화한 느낌을 받았다.
일본인 사진작가 야지마 츠카사(48)가 찍은 사진 속에서다.
할머니들은 정면을, 관람객을 똑바로 응시한다. 침묵을 깨고 피해 사실을 알린 할머니들의 당당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단다.
이용수 할머니의 사진 옆 QR코드에 휴대전화를 갖다 댔다. 할머니의 사연과 할머니가 직접 부른 애창곡이 실린 인터넷 페이지가 열렸다.
"군인이 장교인데, 그 사람이 죽으러 갈 적에 노래를 가르쳐 줬다"라는 할머니의 육성에 이어 구슬픈 일본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일본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부른 '비행사의 노래'라는 제목의 곡이다.
31일 독일 베를린의 한국 관련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는 야지마 씨가 '나눔의 집'에서 활동하던 당시 찍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진전인 '무언에서 다언으로'가 열리는 중이다.
야지마 씨는 2003년 말부터 2006년까지 3년여간 경기도 광주 위안부 피해자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야지마 씨는 이용수 할머니와 특히 각별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조종사를 잊을 수 없데요. 일본에 이용당하기 쉬운 소재일 수도 있죠.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피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면서 야지마 씨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과 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바라본 것과는 선을 그었다.
야지마 씨는 "왜 할머니가 가해국인 일본의 노래를 부르냐는 게 중요하다"면서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에서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소녀가 위안부로 끌려가 군인에게 일본어와 노래를 배우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본군이 가해자지만 극한 환경에서 남녀 사이에 정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일부의 이야기를 일반화해서 동지적 관계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로,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배와 강압에 의해 발생한 위안부 문제에서 핵심적인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야지마 씨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일하게 됐단다.
이번 전시에는 이용수 할머니 외 김순덕, 문필기, 배춘희, 이용녀, 이옥선 할머니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일본인이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활동을 하다 보니 우파 성향의 일본인들의 눈 밖에 난 지 오래다.
"저 같은 사람에 대해 일본 우익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미군이 유포한 정보에 세뇌당해 있다고들 하죠."
야지마 씨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일본놈'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옥선 할머니가 지난 2013년 베를린을 찾아 야지마 씨와 해후했을 때 스스럼없이 "일본놈"이라고 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할머니의 표정에선 반가움과 정감이 가득했었다.
야지마 씨는 2월 초 할머니들과 함께하기 위해 '나눔의 집'으로 돌아간다. 베를린으로 떠난 지 13년 만이다.
"'나눔의 집'에서 올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는데, 고민하다가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베를린에 있는 동안 할머니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다시 마지막으로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야지마 씨는 주로 위안부 역사관에서 일할 것 같다고 했다.
위안부 생존자 23명 중 6명이 '나눔의 집'에 머무신다. 6명 중 3명은 야지마 씨와 함께 있었던 분들이란다.
28일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와의 추억도 이야기했다. 야지마 씨가 한국에 있을 때 김 할머니를 찾아갔단다. 당시 김 할머니가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았던 때였다고 한다. 사진 촬영에도 손사래를 치셨다고.
야지마 씨는 2015년 베를린에서 위안부 관련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한 김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의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살아계셨으면, 한국에 돌아가서 뵐 수 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이제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까지 함께하고자 해요. 할머니들과 함께하면서 제국주의, 식민지배와 여성들의 피해 문제를 더 고찰해보고 싶습니다."
베를린에선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매년 여성 수천 명이 행진한다.
독일 여성뿐만 아니라 강대국과 민족주의의 횡포, 전쟁으로 피해를 본 여러 국가와 민족의 여성들도 참여한다.
지난해 행진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한국 여성, 쿠르드족 여성, 타밀족 여성 등이 축제와 같은 흥겨운 행진을 통해 전쟁과 인종차별, 파시즘에 대한 반대 구호를 외쳤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코리아협의회와 베를린의 한국 여성들은 벌써 준비에 들어갔다.
알자지라방송 프리랜서 기자로 코리아협의회 자원봉사자인 고리 샤마는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는 전쟁과 제국주의에서 어떻게 여성들이 잔인한 성적 폭력을 당하는지 인식하도록 해준다"라며 "현시점에서도 콩고민주공화국과 이라크, 시리아 등 전 세계에서 여성들이 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마침 독일 연방하원에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가 참석한 가운데,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역사를 반추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볼프강 쇼이블레 하원의장은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미래의 기초로 독일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잊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책임은 더 커진다"라며 "비록 헌법에서 홀로코스트라는 용어를 찾을 수는 없지만, 독일인들이 저질렀던 반(反)인류적 범죄에 대한 반성은 헌법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말했다.
독일도 나미비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독일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반성은 일본과는 확연히 다르다.
쇼이블레의 연설에 의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lkbin@yna.co.kr #힙베를린 #hipberlin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