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 마셔도 살찌는 이유? 소장 면역세포가 해답일 수도"
하버드 의대 연구팀, 면역세포·신진대사 연관성 확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데도 균형 잡힌 몸매를 유지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이 그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열쇠를 찾아내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보고서를 발표했다.
31일(현지시간) 미국 NBC 방송 인터넷판에 따르면 연구팀은 생쥐의 소장(small intestine)에 있는 특정 면역세포가 신진대사를 억제하고, 먹이를 에너지로 전환하기보다 지방으로 축적되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유전자 조작으로 이 면역세포를 제거한 생쥐는 지방, 당, 염분 등이 많은 먹이를 먹여도 비만,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등을 일으키지 않았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하버드대 의대의 필립 스워스키 교수는 "음식을 섭취하면 우리 몸은 그 안에 든 에너지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면서 "이번에 발견한 면역세포가 그 결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기본적으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 걸 억제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연구팀은 이 면역세포를 소장으로 유도하는 'beta 7'이라는 단백질에 주목했다.
이 단백질의 생성 유전자를 없앤 생쥐는 유전자를 가진 생쥐보다 먹이를 훨씬 더 많이 먹었다. 하지만 활동량이 더 많은 것도 아닌데 체중은 늘지 않았다.
다음 단계로 연구팀은 지방, 당, 나트륨 등이 많이 든 먹이를 실험군과 대조군 생쥐에 모두 먹였다.
이런 성분이 몸 안에 많으면 대사증후군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의 수치가 높을 때 나타나며, 심장질환 위험이 커지는 것에도 관련돼 있다.
그런데 beta 7 단백질이 없는 생쥐는 살이 찌지 않았고, 혈당과 혈압이 비정상적 수치로 올라가는 포도당 과민증(glucose intolerance)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beta 7 단백질이 있는 생쥐는 살이 찌고 포도당 내성도 약해졌다.
연구팀은 고콜레스테롤(high cholesterol)과 동맥경화가 생기기 쉬운 생쥐에 이 단백질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관찰했다.
이를 통해 beta 7 단백질이 없는 생쥐가 고콜레스테롤 먹이를 줘도 더 건강하고, 지방 수준을 정상으로 유지한다는 사실이 재차 확인됐다.
스워스키 교수와 동료들은, 어떻게 beta 7 단백질이 신진대사에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기 위해 소장에 있는 'T세포'로 알려진 면역 림프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스워스키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신진대사 자극 단백질인 GLP-1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했다.
눈여겨보던 T세포에 GLP-1 수용체가 매우 많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beta 7 단백질이 많더라도 GLP-1 수용체가 없으면 생쥐의 신진대사는 빨라졌다.
스워스키 교수는 "GLP-1 수용체의 발현을 유도하는 결정적인 세포가 바로 T세포라는 사실이 여기서 입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신진대사를 늦추는 세포는 왜 생긴 걸까.
먹을 것이 매우 부족했던 수백만 년 동안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결과라는 게 가능한 추론 중 하나다.
스워스키 교수는 "먹은 것을 지방으로 비축하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억제 장치를 갖는 건 생존에 유리했다"면서 "하지만 영양 과다가 많은 현 상황에선 이런 장치가 역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존스홉킨스의대 심장병 예방센터의 임상연구 디렉터인 마이클 블라파 박사는 "어떤 사람은 살찌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살이 잘 찌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면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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