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내려오지 말아라"…자손 보고싶어도 꾹참는 안성 주민들
구제역 확산 우려해 자녀 귀성도 만류…다중모임 행사 줄취소
(안성=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 "명절이라도 뭘 어쩌겠어. 자식들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에서 한우농장을 운영하는 김모(71) 씨에게 다가오는 설 명절은 딴 세상 이야기다.
손주들 재롱을 보며 모처럼 모인 가족들과 명절을 시끌벅적하게 보내고픈 마음이 굴뚝 같지만, 지난 28일과 29일 안성시내 두 곳의 농가에 연달아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내려지며 명절에 대한 기대감은 '희망 사항'으로 변해버렸다.
김씨는 최근 서울에 사는 두 아들에게 "이번 설에는 집에 오지 말고 구제역이 잠잠해지면 그때나 내려오라"고 당부했다.
외부에서 차량이 오가는 도중 구제역이 옮겨올 경우 자식같이 키운 소들을 모두 살처분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자식들이 보고 싶어도 상황이 이럴 땐 외부와의 왕래를 딱 끊는 수밖에 없다"며 "조금만 주의를 소홀히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인근 미양면에서 젖소농장을 운영하는 박모(68) 씨도 이번 명절은 아내와 조촐히 보내기로 했다.
박씨는 "얼마 전 태어난 손녀가 눈에 아른거리지만, 자식들에게 구제역이 사라진 뒤에 만나자고 말했다"며 "차례상 자체를 못 차릴 상황인데 이건 조상님도 이해하셔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처럼 구제역이 발생한 안성시 주민들에게 코앞으로 다가온 설 명절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버렸다.
지난 29일 두 번째 구제역 발병 이후 추가로 접수된 의심 신고는 없지만, 주민들은 설 연휴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면 행여나 구제역이 추가 확산하지는 않을까 벌써 긴장하는 모양새다.
구제역 차단과 방역에 나선 지자체들과 방역 당국도 설 연휴 때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 회의에서 "내일 저녁부터 귀성이 시작되지만 아쉽게도 구제역 비상이 걸렸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과 지역 방문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고 불가피하게 방문하게 되시면 차량 소독에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안성시는 최근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대규모 축제, 단체 모임 및 기념식 등 다수 인원이 몰릴 수 있는 행사를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각 읍·면·동사무소와 단체에 발송했다.
또 전날 우석제 시장 주재로 읍·면·동장 긴급회의를 열어 설 명절 기간 각종 단체행사를 가급적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보개면사무소는 이날 오전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계획했던 건강검진 일정을 취소했고, 금광면사무소는 지난 29일 7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던 주민자치위원회와 노인회 일정을 취소했다.
금광면사무소 관계자는 "시골 마을에 모처럼 활기가 돌아야 할 명절이지만 구제역 확산을 막는 게 더 시급해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며 "상황에 따라 연휴 이후에도 문제가 될 만한 부분에 대해선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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