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옛 일본군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선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밤 향년 93세로 영면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치러진다. 레이더 조사(照射)와 초계기 근접비행 공방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 상황으로 치닫는 시점에 전해진 김 할머니의 비보라 더욱 안타깝고 착잡하다.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고 김학순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문제를 글로벌 이슈로 만든 여성인권 운동의 상징이다. 정부가 지난해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정한 8월 14일은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위안부 피해를 공개한 날로, 해외에서는 '세계 위안부의 날'로 통한다. 김학순 할머니에 이어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만 14세 나이 때부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다닌 자신의 참담했던 피해를 공개한 이후 전 세계를 돌며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했다. 아울러 '전쟁없는 세상' 등의 해외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재일 한인 청소년과 전쟁지역 아동 등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하는 등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활동가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암 투병으로 병상에 누워있을 때도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고 싶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위안부 만행은 전시에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점에서 반인륜적 범죄로 꼽힌다. 일본이 아무리 사과한다 하더라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용서하기 쉽지 않은 만행이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을 사실상 해산한 데는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한 '밀실 합의'라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 그런데도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측 태도는 인류의 양심과는 거리가 멀다. 1993년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인정한 '고노담화'의 의미를 훼손한 '고노담화검증보고서'를 2014년 일방적으로 발표한 아베 정권이 국제적 약속 준수를 압박하는 것은 '내로남불' 격이다. 최근 레이더 시비에 이어 초계기 근접비행 등으로 군사 분야까지 공세 수위를 높이는 일본을 보면 지난 세기 제국주의 일본의 모습이 떠오른다.
김 할머니가 별세한 날에 같은 위안부 피해자 이 모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 이제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생존자는 23명뿐이다. 나머지 생존자도 모두 고령이라 이들에게 사죄를 전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인류의 보편적 인권문제를 외면한 채 한일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최근 일본 우익의 모습은 우려스럽다.
가까운 이웃인 한일 두 나라는 과거사 문제를 딛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 문제로 두 나라 정부와 정치권이 간격을 좀체 좁히지 못하는 것은 양국 모두에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가장 가깝고도 멀다'는 한일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 친구 사이로 나아가려면 역사에 대한 일본의 직시와 진솔한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 일본이 단 한 번이라도 자국 입장에서 떠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입장에 서보길 바란다. 그래야 1992년 시작된 '수요집회'가 왜 아직도 열리는지, 왜 고령이 된 '위안부 소녀'들이 참석해 한(恨)을 토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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