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협비행 갈등' 美 중재나설까…해리스 행보 주목
해리스, 鄭국방· 康외교와 연쇄회동…美 중재로 한미일대화 추진될지 관심
韓, 갈등 장기화 땐 국제무대서 '日 위협비행' 문제제기 방침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28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일 '레이더-위협비행 갈등'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이 한일 사이에서 중재에 나설지에 관심이 쏠린다.
한일 양자 대화로는 일제 강제징용 배상 등 역사 문제에 군사 갈등까지 겹친 복합적 문제를 풀기에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한미일 3자 대화 등을 통한 미국의 중재 역할이 주목된다.
해리스 대사가 이날 용산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정 장관과 면담을 가진 것은 최근 한일갈등을 풀기 위한 미국의 중재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특히 해리스 대사는 미 태평양사령관을 지낸 해군 4성 장군 출신으로서 이번 사안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그의 행보는 이목을 끌 수 밖에 없었다.
정 장관과 해리스 대사는 비공개 1시간 20여분 간 만나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면서 한일갈등 현안인 레이더-위협비행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군참모총장, 합참의장 등을 지낸 정 장관과 해군 제독 출신 해리스 대사의 논의는 그들의 전문성에 비춰볼 때 상당히 심도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해리스 대사는 이날 정 장관에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외교부 청사에서 만났는데 이때도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협상 문제와 함께 한일 레이더-위협비행 갈등 현안이 거론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시하는 미국 입장에선 한일 군사갈등 장기화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은 작년 12월 하순 레이더-위협비행 갈등이 불거진 이후 화상회의와 대면회의 방식으로 두 차례 협상을 가졌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렸다.
일본은 지난달 20일 우리 해군 함정이 자국 초계기에 화기관제(사격통제) 레이더(STIR-180)를 조사했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군은 과학적인 조사결과 그런 일은 없었고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함정에 저고도 위협비행을 했다고 맞섰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이번 군사갈등과 관련한 한국과의 협의를 중단한다고 최근 발표했고, 우리 측도 다음 달로 예정됐던 해군 1함대사령관의 일본 해상자위대 기지 방문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한일 군사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미국 측이 중재에 나선다면 양국 간 갈등 양상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우리 정부는 지속해서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밝혀왔지만, 일본이 협의 중단을 발표했다"면서 "미국이 한미일 대화를 하자고 제안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중재 하의 한미일 3자 대화에 응할 의사가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도 동맹국인 미국이 중재하는 3자 대화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재에 나선다면 한일 간 갈등 악화를 막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양측 해양 전력이 해상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권유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한일 군사갈등 해소를 위해 정치력을 써가며 적극적으로 중재를 시도할지는 미지수다.
동맹국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를 중시했던 과거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이번 트럼프 행정부는 '양자주의'를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한일갈등은 당사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라며 방관할 가능성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일관계 악화에 대해 미국도 우려는 하겠지만 지금 트럼프 정부에게는 자신들 아시아 전략에 한국이 어떤 기여를 하도록 유도할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며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진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장관급을 포함한 미국 당국자들 차원에서는 한일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이나 정상(트럼프)이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이번 한일 군사갈등이 지속하면 일본의 위협비행 문제를 국제무대로 끌고 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방부는 올해 4월에 개최되는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WPNS) 실무회의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한 저공 위협비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WPNS'의 해상규범인 'CUES'(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에 관한 규범·Code for Unplanned Encounters at Sea)를 근거로 일본의 위협비행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방안에 대해 "그 회의(WPNS 실무회의)에서 이번 사안에 대해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충분히 그 회의에서 논의해서 국제적인 규범이라든가 관례를 결정하는 것이 앞으로 이와 같은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WPNS는 서태평양 지역 해군 간 해양 안보협력과 상호신뢰, 이해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1988년부터 2년 주기로 실시되고 있는 다자간 협의체다. 올해는 서태평양해군심포지엄 본회의가 열리지 않지만, 오는 4월 말 브루나이에서 과장(대령)급 실무회의가 개최된다.
ho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