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에 발 묶인 남북교류…인도적 협력까지 '본말전도'
타미플루 북송, 운송수단 美제동에 실기 우려…화상상봉도 지연
견고한 제재망에 민간교류도 각종 어려움…'불필요한 차질' 최소화해야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남북 당국이 추진하는 각종 협력사업이 본질과 무관한 부분까지 대북제재의 적용을 받으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에 전달되는 물자의 운송수단 등 부차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제재 관련성을 거론하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 협력에 지나치게 교조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말 한미 워킹그룹 대면회의에서 북한에 독감(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를 제공하는 방안에 대해 미국과 공감대를 이룬 뒤 약품 전달을 실무적으로 준비해 왔다.
남북은 당초 지난 11일에 타미플루를 전달하는 방안을 조율했지만 이후 일정이 거듭 연기되고 있다.
북한도 인수를 준비해야 했지만, 타미플루 전달에 사용되는 운송수단의 제재 저촉 여부를 둘러싸고 한미 간의 협의가 길어진 것이 주된 이유로 알려졌다.
정부는 타미플루를 북측에 전달하고 나오는 차량은 제재와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 측은 약품과 운송수단은 다른 문제라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인플루엔자 치료 약품은 인도적 사안으로 미 측은 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가 있다"면서도 "사업 추진 과정에서 대북제재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제사회 및 유관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감이 유행하는 겨울철이 지나면 사실상 타미플루 제공의 실효성이 퇴색할 수 있다고 우려도 나온다. 이런 지적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실기하지 않고 최대한 조속히 전달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역시 인도적 사업인 이산가족 화상상봉도 통신선과 모니터 등 북측에 반입할 상봉 장비의 제재 면제를 위한 논의에 시간이 걸리면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화상상봉 장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뿐만 아니라 미국의 독자제재에도 저촉될 소지가 있다.
정부는 북측에 전달되는 화상상봉 장비가 한 장소에 고정 설치돼 이산가족의 상봉이라는 인도적 활동에 사용될 것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셈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화상상봉 논의가 길어지는 데 대해 "미국의 대북제재 규정이 그만큼 촘촘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진행된 경의선·동해선 북측 구간 철도 공동조사 때는 북한으로의 노트북 반출이 불허돼 조사단원들이 수기로 조사 결과를 정리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조사를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귀환하면서 가져올 것이 확실함에도 미국은 불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응, 북한으로 '쇠붙이 하나' 들여가기 힘들 정도의 견고한 제재망을 구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상의 각종 금수조치 뿐 아니라, 북한 등 테러지원국에는 미국산 부품이나 기술이 10% 이상 포함된 제품을 반출할 때 반드시 승인을 받도록 한 미국의 수출관리규정(EAR) 등도 존재한다.
이런 제재상황 속에서 남북 협력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생겨난 '부조화'가 교류사업의 본래 의도·목적과는 먼 부분까지 일일이 발목을 잡는 셈이다.
제재의 영향을 받는 것은 민간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진행된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조사 당시에도 굴삭기 등 발굴에 필요한 장비의 반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건 역시 미국이 굴삭기 반출에는 동의하면서도 운송차량의 방북에 까다로운 입장을 견지해 발굴이 한동안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방북 행사를 추진하는 한 민간단체는 참가자의 노트북 지참이 어려울 수 있다는 입장을 정부로부터 전달받았는데, 미국의 민감한 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리는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4개 대북지원 단체의 제재 면제 요청을 지난 18일(현지시간) 승인하는 등 국제기구나 미국 구호단체가 신청하는 대북 인도지원 물품에 제재 예외를 인정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정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 민간단체들은 대북 인도적 지원 품목에 상당한 제한을 받는 실정이다.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는 "(절차 밟기가) 쉽지 않다"며 "인도적 사업이라 판단하면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면제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교류협력보다 방북 행사 중심의 '이벤트'성 사업이 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대북제재가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해 온 수단 중 하나인 만큼 남북 교류도 현재의 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북제재가 북미의 '비핵화-상응조치' 협상 결과에 밀접히 연결된 만큼 정부와 민간단체 모두 2월 말 진행될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도적 협력 등 명분이 있는 남북교류 사업이 지엽적인 문제로 불필요한 차질을 겪는 '본말전도' 현상은 정책적 차원에서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의 관료들이 지난 10년간의 대북 불신으로 인해 보수화돼 불필요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며 "통일부 등 남북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이 미국에게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잘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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