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구심 커지는 중앙박물관 현대자료 구매 시점·과정
연말에 생존 작가 공예품 4점, 6천300만원에 구입
4월 소장품 확대 회의→10월 학예실장 교체→12월 소장품 확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이 작년 연말 현대공예품 4점을 사들인 데 대해 유물 수집 영역을 근현대 작품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배기동 관장의 소신에 따른 정책이라고 해명했지만 현대자료 구매 시점과 과정, 이유를 둘러싸고 의구심이 증폭하고 있다.
박물관은 손혜원 의원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건물을 투기했다는 의혹에 이어 피감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박물관에 특정 학예사 인사교류와 현대공예품 구매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현대공예품을 사들인 정확한 경위를 공개하지 않았다.
박물관 관계자는 "지속해서 추진한 소장품 범위 확대 결과로, 금속공예품은 손혜원 의원과 무관하다"며 "중앙박물관이 유물을 어디에서 얼마에 샀다고 알려지면 곤란해질 것 같아 구체적 구매 가격과 경로를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언론의 지속적 공개 요청에도 박물관이 함구한 현대자료 구매 가격과 경위가 드러났다.
23일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실이 박물관으로부터 받은 각종 자료에 따르면 정광호 공주대 교수가 2008년에 만든 작품 'The Pot 84130'은 3천만원에 사들였다. 서도식 서울대 교수가 2018년 제작한 'M1001G'와 'M2815C'는 각각 1천만원, 'M1011G'는 1천300만원에 구입했다.
구매 시점은 12월 19일이며, 구입경로는 '일반구입'으로 명시했다. 구입처는 '정○○', '서○○'으로 기록했는데, 작가에게서 직접 사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은 금속공예를 기관 브랜드로 내세운 국립청주박물관과 협의를 거쳐 전시에 필요한 공예품을 샀다고 주장했지만, 수많은 현대공예품 가운데 이 작품들을 선택한 까닭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박물관은 연간 유물 구입비 약 40억원 중 2015년 8천780만원, 2016년 1억8천만원, 2017년 8천만원을 20세기 이후 자료 구매에 썼으나, 변관식·허건·김은호 등 주로 사망한 작가의 작품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변관식 등의 작품은 누가 봐도 중앙박물관 성격에 맞는 유물 구입으로 평가된다.
생존 작가가 제작한 현대미술품에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던 박물관이 지난해 전격적으로 유물 수집 범위를 확대한 과정을 보면 의심을 부를 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물관은 소장품 확대 전략 수립을 위해 작년 4월 5일 직원 13명이 모여 내부 회의를 했고, 4월 26일에 외부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내부 회의에서는 소장품 수집 시기를 현대로 확장하는 데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자들은 박물관이 현대 문물을 수집해야 한다면 현실적 명분이 뚜렷해야 하므로 조직 강령을 재수립하고, 문체부 소속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박물관 학예직 출신인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목수현 전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이 참석한 외부 자문회의에서도 수집 유물의 제작 시기를 현대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한 뒤 범위 확대는 바람직하나 항구적 박물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두 차례 자문회의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소장품 범위 확대는 유물 수집과 연구 업무를 총괄하는 민병찬 학예연구실장이 '순환보직인사'의 일환으로 10월 1일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은 지난해 12월 새로운 소장품 수집 계획을 학예연구실 안에서 회람했는데, 이 계획서는 첫머리부터 '소장품 수집 범위의 시간적 확대'를 다뤘다.
계획서는 "현재적 관점에서 근대와 현대 시기 규정은 영구적이지 않다"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재가 곧 과거가 되므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수집의 시간적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대 문화유산을 보관하기 위한 '현대 문화유산 관외 보존센터'를 경기 북부권이나 강원권에 설립한다는 복안도 계획서에 담았다.
박물관 안팎에서는 지난해 이뤄진 소장품 범위 확대 추진, 민병찬 실장 인사, 현대공예품 구매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손 의원의 압력 혹은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 자문회의에서 나온 지적 사항인 문체부 소속 다른 박물관·미술관과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유물 수집 범위를 확대했고, 배 관장이 소장품 확대 이유로 제시한 논리와 손 의원이 국정감사 등에서 역설한 지론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으로 분석된다.
손 위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배 관장에게 취임 이전부터 현대미술품 구매 필요성을 언급했다면서 "20세기, 21세기에 우리는 이런 문화를 일구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박물관 책무"라고 주장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