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보다 더한 동지애로 버텼다" 굴뚝농성 눈물의 해단식(종합)
426일 만에 땅 밟아…"많은 사람이 함께해줘 감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김철선 기자 = 75m 높이 굴뚝에서 농성해온 파인텍 노동자들이 11일 마침내 땅을 밟았다. 2017년 11월 12일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오른 지 426일 만이다.
파인텍 노사는 이날 공장 재가동과 조합원 5명의 업무 복귀를 골자로 하는 협약서에 사인했다.
교섭 타결에 따라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2시 30분께 목동 열병합발전소 농성장에서 '파인텍 교섭 보고 및 굴뚝 농성 해단식'을 열었다.
이날 농성장 인근은 지상으로 내려오는 농성자들을 마중하러 나온 시민과 활동가,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굴뚝 위에서 로프로 몸을 묶고 내려갈 채비를 마친 농성자들은 오후 3시 50분께 사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박준호 사무장이 먼저 땅을 밟았고 이어 홍기탁 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이날 아침 두 사람에게 교섭 결과를 설명하고 농성 해제를 설득하기 위해 올랐던 김옥배 조합원이 지상으로 복귀했다.
오후 4시 15분께 고공 농성자들을 비롯한 5명의 파인텍지회 조합원들은 굳게 닫혔던 열병합발전소 철문을 열고 나왔다.
홍 전 지회장은 "고맙다. 부족한 다섯명인데 너무 많은 사람이 함께해준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위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노동조합 하나 지키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며 "20년 넘게 지켜왔던 민주노조인데 그걸 지키는 게 이 사회에서 왜 이렇게 힘든지 진짜 더러운 세상"이라고 울컥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발언 내내 눈물을 참느라 힘겨워했던 그는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는 구호로 마지막 인사를 갈음했다.
이어 박 사무장은 "파인텍 5명의 동지는 그 어떤 가족애보다 더한 동지애로서 이렇게 왔다"며 "단식까지 하시면서 저희 투쟁을 응원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 많은 분들, 한분 한분 연대해주신 전국의 수많은 분께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단 말씀 드리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차광호 지회장은 "참 참담하기도 했다"며 눈물을 삼켰다. 이어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어서 홍기탁, 박준호 두 동지가 이 땅을 밟을 수 있었다"며 "다섯 명이 똘똘 뭉쳐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고(故)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가 두 농성자를 위해 미리 준비한 새 신발을 신겨줬다.
장기간 농성에 건강이 악화한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 그리고 차 지회장은 앰뷸런스를 타고 녹색병원으로 이송돼 건강검진을 받았다.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이보라 과장은 "세 사람 모두 입원 전에 필요한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심전도 검사 등을 받게 된다"며 "현재 혈압과 맥박은 괜찮다. 어지럼증 외에는 본인들도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일단 미음 100㏄ 정도로 농성 종료 후 첫 식사를 하고 다음부터 식사량을 더 늘려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고공 농성자들이 내려오기에 앞서 농성장에서는 수많은 활동가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박승렬 목사는 "사람도, 새들도 살지 않는 그곳에서 버티고 있던 두 분이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게 됐다"며 "노사 양측이 평화롭고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새 사회로 갈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 갖고 기도해야겠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노동자와 시민이 연대해서 작은 산을 넘었다"며 "앞으로 이 합의가 지켜지도록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송경동 시인은 "오늘이 촛불 항쟁 이후 사회변혁 과제 중 하나였던 2천200만 노동자 가족들의 인권존중이 시작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며 "다시는 그 누구도 저 높은 굴뚝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모두가 살아가는 이 평지가 조금은 더 평등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인, 나승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박승렬 목사 등은 연대의 의미로 25일간 단식했다. 박래군 소장은 단식 23일 만인 9일 심장 이상이 발생해 단식을 중단했다.
또 이날 농성장에는 정리해고 문제로 13년째 농성 중인 콜텍의 이인근 지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 지회장은 "먼저 굴뚝 농성 과정에서 합의를 이룬 파인텍 동지들에게 축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콜텍 노동자들 역시 이 부당한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3년 시간을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다"며 "저희는 끝까지 투쟁한다. 당당히 콜텍으로 돌아가서 잘못된 해고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받고 명예롭게 정년을 맞이하겠다"고 밝혔다.
426일만에 땅 디딘 굴뚝농성자들 "올곧게 나가겠다"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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