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소환] "송구, 편견·오해"…전략 드러낸 '친정 회견'
낮은 자세로 도의적 책임만 인정…우회적 표현 썼지만 혐의 적극 부인
"제 부덕의 소치, 우리 법관들은 믿어달라"…법원과 교감 시도 분석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이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고 따라서 그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1일 검찰 출석 직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한 회견에서 낮은 자세로 운을 뗐다.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전·현직 고위법관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은 상황을 두고 "제가 안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양승태 "제 부덕의 소치…모든 책임 지는 게 마땅" / 연합뉴스 (Yonhapnews)
7개월 전인 지난해 6월1일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한 '놀이터 회견'과 분명한 대조를 보였다.
당시 회견은 여러 가지 의혹 제기가 잘못됐고, 재판의 순수성을 이해해 달라는 게 골자였지만 이날 회견에서는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날 회견 내용에는 향후 검찰의 영장청구나 기소, 법원의 재판을 염두에 둔 전략적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일단 검찰 포토라인에서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대법원 앞'을 회견 장소로 정한 것부터 논란을 빚었다.
검찰에 출석하는 주요 인사가 검찰 포토라인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출석 도중 다른 장소를 택해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검찰의 수사 방식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동시에 대법원을 배경에 둔 채 자신이 '사법부의 상징적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실제로 이날 발언에도 이런 의도가 엿보인다. 도의적 책임을 겸허히 인정하되 향후 사법 절차에서 적용될 혐의는 우회적 표현을 동원해 부인하고, '친정'인 법원이 이런 입장을 깊이 헤아려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려는 뜻이 발언 곳곳에 묻어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우선 이번 사태로 참담함을 느낄 후배 법관들과 교감을 시도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우리 법관들을 믿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음을 굽어살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선입견', '편견', '오해' 등의 표현을 동원해 이번 사건을 두고 검찰이 적용한 혐의를 사실상 부인했다.
그는 "오해가 있으면 이를 풀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겠다.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검찰 수사에서 관련 자료 증거들 나오고 있는 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나"라고 묻자 "그런 선입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재차 말하기도 했다.
검찰이 죄가 되지 않는 일에 대해 모종의 '프레임'을 갖고 수사하고 있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저는 믿는다"고 밝혔고, 특정 법관에 대한 부당한 인사개입이 없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변함없는 사실"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이런 발언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이날 조사에서 양 전 원장이 혐의를 일절 인정하지 않으면서, 향후 재판을 통해 무죄 판단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드러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한 인사는 "철저히 낮은 자세를 취하면서 검찰 수사는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등 오늘 회견 자체가 전반적인 의도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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