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경제상황' 추가…"인상 속도조절 수순"
전문가 참여 구간설정委, 최저임금 고용영향 등 상시 분석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김지헌 기자 = 정부가 최저임금제도 시행 31년 만에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에 나선 것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과도한 논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고용 사정을 포함한 '경제적 상황'을 추가하기로 한 것은 인상 속도조절을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은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게 핵심이다.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 상·하한선을 먼저 정하면 노·사 양측과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가 그 안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노·사 교섭 중심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전문가 개입을 확대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가 최저임금 구간 설정…31년 만의 개편 / 연합뉴스 (Yonhapnews)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 상·하한선을 정하는 기준으로 고용 수준과 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을 포함한 '경제적 상황'을 추가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근로자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 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경제적 상황은 포함하지 않는다.
이재갑 장관은 기업 지급 능력을 측정할 지표에 관한 질문에 "전문가들이 협의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한국은행과 통계청 통계,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실태조사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결정에 경제적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은 작년 12월 노동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131호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노동자 생활 보장 외에도 '경제적 요인'을 균형적으로 고려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올해도 고용 수준을 비롯한 경제적 상황이 작년보다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새로운 최저임금 결정 기준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논의부터 적용되면 최저임금 상·하한선은 낮은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경제적 상황을 추가하기로 한 게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7월 최저임금위원회의 올해 최저임금 의결 직후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실현할 수 없음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체계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방식인데 공익위원을 통해 전문가 의견을 반영했다. 공익위원이 대학교수와 연구기관 연구원 등으로, 대부분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먼저 정하는 것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행 방식에서도 공익위원이 노·사가 극한적인 대립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할 때 '심의 촉진 구간'을 제시해 협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신설되는 구간설정위원회의 차이점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으로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구간설정위원회는 연중 상시로 운영되며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하게 된다.
이재갑 장관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 인상 속도조절을 위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공정성과 합리성을 보완할 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거리를 뒀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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