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경제, 무역전쟁 아닌 일자리가 문제…심각해질 것"
'車산업 구조조정·제조업 해외이전' 등으로 일자리 유지 어려워져
홍콩 저명 금융인 허용학 대표 인터뷰…"홍콩 집값 급등은 개발업자 담합 탓"
"국민연금 수익률 높이려면 전문가 영입해 장기 투자 맡겨야" 조언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새해 중국 경제의 최대 악재라는 분석이 많지만, 진정한 문제는 중국 산업의 임박한 구조조정과 일자리 부족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허용학 퍼스트브리지 대표는 2일 연합뉴스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치르느라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양국 경제에 위기를 불러올 정도로 극단적으로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 대표는 JP모건 아시아 인수·합병(M&A) 대표, HSBC 아시아 투자은행(IB) 부문 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홍콩의 중앙은행이자 국부펀드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의 대체투자 최고투자책임자(CIO)를 7년이나 맡은 저명 금융인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 모두 무역전쟁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양국 경제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재선을 원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국내 정치의 안정을 원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모두 이를 원하지 않으며, 일정 선에서 타협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 대표는 지금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최대 문제는 무역전쟁이 아닌 일자리라고 분석했다.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과 저부가가치 수출 제조업의 해외이전 등으로 중국 내 일자리가 부족해질 수 있으며, 이는 심각한 소득 불평등과 더불어 중국 사회에 상당한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진단이다.
허 대표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성장률은 올해 들어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며, 이는 과잉생산을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며 "특히 허약한 체질을 지닌 국영 자동차 제조업체는 더는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중국제일자동차그룹(FAW), 둥펑(東風), 충칭창안(重慶長安) 등 국영 자동차 기업들의 주도 아래 고성장을 누려왔지만, 지난해 말부터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급감하는 등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허 대표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국영 자동차 기업을 육성하려고 했던 나라는 예외 없이 실패했다"며 "자동차산업이 수만 개의 협력업체를 거느린 중국의 대표적인 일자리 창출 산업이라는 점에서 국영 자동차 기업의 구조조정은 일자리 측면에서 상당한 파문을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 내 저부가가치 수출 제조업체들이 최근 베트남, 캄보디아 등으로 생산시설 이전을 서두르고 있어 일자리 문제는 올해 중국 정부의 최대 당면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진단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값 급등 문제에 시달리는 홍콩의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부동산 개발업체의 담합에 의한 수급 불균형 문제를 지적했다.
홍콩 집값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으로 폭락한 이후 15년 동안 6배 가까이 폭등해 아파트 가격이 평(3.3㎡)당 1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집값이다.
허 대표는 "홍콩 정부는 매년 공유지를 매각해 막대한 재정 수입을 거두는데, 이를 사들인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개발에 나서지 않고 유휴지로 그냥 놔둔다"며 "이를 통해 부동산업체들은 공급 부족으로 인한 기존 부동산의 가격 상승과 임대료 수입 증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지배력 강화 등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한국의 집값이 홍콩의 집값을 쫓아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지만, 이러한 단순 비교는 옳지 않으며 홍콩 부동산 시장만의 고유한 특성과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이러한 공급 부족 문제로 인해 홍콩 집값이 폭등했고, 이는 젊은이들에게서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고 사회 불안까지 야기하고 있다"며 "유휴지 개발을 의무화하는 등 부동산 개발업체의 담합을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 대표는 세계 5대 국부펀드 중 하나인 HKMA의 기금 운용을 7년이나 책임졌던 경험을 살려 국민연금에 대한 조언도 내놓았다.
그는 "HKMA 기금이 지속해서 양호한 투자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고급 인재를 유치해 장기간 기금 운용을 맡기고, 투자 성과에 따른 성과급의 비중을 높이는 등 보수 체계에서 인센티브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 최고로 꼽히는 캐나다의 연기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연기금이기도 하다"며 "높은 보수와 장기 계약, 독립성 보장 등의 좋은 대우가 보장돼야만 전문가들을 데려올 수 있으며, 이러한 전문가들이 영입돼야만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금융사들의 세계화 전략에 대해서는 "다른 금융사들이 특정 국가에 진출하면 무조건 따라서 진출하는 식으로는 진정한 세계화를 이룰 수 없다"며 "뚜렷한 수익 목표를 세운 후 현지 사정에 맞는 차별화 전략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