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전도사' 박용만 "냄비속 개구리 화상 입기 시작"
"지금도 규제 때문에 죽겠다는데 800개나 더할 규제가 뭐가 있나"
"정책방향 잘 잡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성장·분배 담론 벗어나야"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냄비 안의 개구리가 지금까지는 땀을 뻘뻘 흘리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화상을 입기 시작할 것이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른바 '규제개혁 전도사'를 자처하는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26일 출입기자단 송년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를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면서 활력을 되찾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규제개혁 노력을 강한 어조로 거듭 촉구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회를 여러 차례 방문해 규제개혁 법안 처리를 촉구했던 박 회장은 특히 "정부가 규제혁파에 앞장을 서야 하는데 안 서고 있다"며 여야 정치권에 이어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다음은 박 회장이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
--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전체적인 진단과 해결책은.
▲ 우리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하락세에 있기 때문에 해결책도 구조적이고 근본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정부가 상당수 공감하고 정책에 일부 반영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방향은 잘 잡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정책이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과정에서 디테일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구호나 선언에 끝날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선택하는 이념적이고 소모적인 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제나 제도의 플랫폼을 바꿔 성장을 용이하게 하고, 동시에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분배도 개선해야 한다.
-- 우리 경제가 구조적 하향 추세에 있는 원인은.
▲ 역대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진행된 것이다. 마치 이번 정부 들어서 그렇게 된 것처럼 얘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고도 성장세가 꺾이고 새로운 이머징마켓이 대두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정책 방향을) 바꿨어야 했는데, 과거의 모델로 새로 부상하는 나라들과 힘겨운 경쟁을 하면서 동시에 규제에 막혀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 최근 카풀 서비스 찬반 논란에 대한 입장은.
▲ 내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극한대립의 한복판으로 끌려가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만 갈등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봐야 한다. 운수, 소매, 음식, 숙박 등 4개 생활서비스업이 대부분인데, 이들 업종은 유난히 영세상인들이 많은 분야다. 이분들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운데, 국민 입장에서는 서비스 욕구가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 협력이익 공유제, 집중투표제 등 사회적 논란이 좀체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 아무도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건 우리가 이런 선진국화를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운동 차원의 분위기 조성 같은 게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규범의 룰이 작용하지 않고 법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규범이 작용하지 않고 아무도 십자가를 지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법은 자꾸 늘어나는 것이다. 20대 국회 들어 기업 관련 법안이 1천500개 이상 발의됐는데, 이 가운데 800개 이상이 규제법안이다. 지금도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죽겠다는데, 800개나 더할 규제가 뭐가 있나.
-- 정부가 져야 할 십자가는 어떤 것인가.
▲ 정부가 규제혁파에 앞장을 서야 하는데, 말은 하지만 잘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동정적이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전인미답의 규제혁파를 할 경우 '일대혼란(total chaos)'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이 있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감사를 받는 과거 사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 정부가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해야 할 3대 과제는.
▲ 우선 더 늦기 전에 파격적인 규제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땀을 뻘뻘 흘리던 냄비 안의 개구리가 이제 피부 곳곳에 화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두번째는 우리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남북관계가 잘됐으면 좋겠다. 글로벌 경제가 꺾이고 내수 경기도 안 좋은데 남북관계마저 틀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세번째는 갈등을 해결할 때 누구나 다 행복하게 하는 해법은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십자가를 매면서 근본적인 치유를 했으면 좋겠다.
-- 정부와 소통은 잘 되고 있나.
▲ 제가 전화하면 누구나 다 만나준다. 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 등은 어느 때나 다 만나준다. 예전에는 전화통화도 쉽게 못 했는데 과거 어느 정부 때보다 열려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제조업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면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기회를 살리라'고 말한 게 잘못된 경기진단이었다는 일부 지적이 있는데.
▲ 그건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 통계를 제시한 사람의 잘못이다. 경제가 나쁘다는 건 다 알고 있는데 대통령이 어떻게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겠느냐. 그래서 다 바뀐 것 아닌가?
-- 대통령 순방에서 기업인 행사가 사라진 이유는.
▲ 왜 없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못 들었다. 다만 이번 정부는 순방 기간에 경제포럼 열어 기업인들과 악수하고 연설하고 끝내는 것을 진부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다른 형태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서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데, 국제관례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 내년 경제인 신년인사회 때 대통령 참석 여부는.
▲ 안 오실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작년에는 (대통령 불참이)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청와대에서 '관행대로 하면 가야 할 곳이 너무 많다'고 말해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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