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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신궁' 김진호 "선배들이 있었기에 꽃길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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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신궁' 김진호 "선배들이 있었기에 꽃길 걸었다"
2018 스포츠영웅으로 헌액…"양궁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양궁 김진호(57)는 19일 스포츠영웅 헌액식에서 '선배님들'을 먼저 언급했다.
김진호에게는 늘 '원조'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그는 자신보다 먼저 한국 양궁을 개척한 선배들을 잊지 않았다.
김진호는 "양궁을 먼저 하신 선배님들께 감사드린다"며 "지금 후배들은 시대를 잘 타고나서 좋은 여건에서 양궁을 하고 있지만 선배님들은 불모지에서 양궁을 시작하고 개척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행운아였다. 선배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갈고 닦은 꽃길을 걸어 메달을 땄다"며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선배들이 갈아놓은 밭에서 김진호는 처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는 세계 최강 한국 양궁 신화의 첫 페이지를 써 내려간 인물이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예천여중 1학년 때 처음 활을 잡은 김진호는 고등학교 때 태극마크를 달았고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1978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양궁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한국 양궁의 위세를 떨친 것은 이듬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한 것이었는데 19살의 김진호는 30m, 50m, 60m 거리별로 모두 정상에 오른 데 이어 개인 종합과 단체전까지 5개의 금메달을 거머쥐며 세계 양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198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 5관왕,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등을 차지한 김진호는 1986 서울 아시안게임 3관왕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최전성기이던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불참으로 메달 꿈을 놓치고, 4년 후 LA에서도 개인전 동메달에 그치는 등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양궁 강국의 명성을 떨치기엔 충분했다.
골프에 '박세리 키즈'가, 피겨스케이팅에 '김연아 키즈'가 있기에 앞서 양궁엔 '김진호 키즈'가 있었다.
세계 무대를 주름잡은 김진호의 활약에 전국적으로 양궁팀 창단 열풍이 일었다.
김진호는 은퇴 후 한국체대 교수로 직접 후학도 양성하고 있다.
김진호 등 선배들이 불모지에서 개척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면 지금의 후배들에겐 세계 최강의 명성을 지켜야 하나는 부담이 또 다른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그는 "그럴 때마다 후배들에게 '괜찮아, 편안하게 즐기면서 하면 절대 우리가 무너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며 "화살이 똑바로 날아가는 것처럼 항상 바르고 정직하게 살면 믿는 것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고 했다.
선수 은퇴 이후에도 양궁과 함께 하는 김진호는 "양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0점을 9점이라고 할 수도 없고 9점을 10점이라고 할 수도 없다"며 세계 최강의 실력뿐만 아니라 공정함과 투명함으로도 호평받고 있는 한국 양궁에 자부심을 나타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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