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 곡성군 인재 유학 십시일반
런던정경대 대학원 합격했으나, 집안 사정 탓에 포기 위기 20대 학생 도움
편지 들고 군수 찾아간 사연 퍼져 성금 답지 이어져…"잊지 않겠다"
(곡성=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 학비는 집을 팔아서라도 마련해 볼 테니까…."
박병준(24) 씨는 어려서부터 전남 곡성군의 소문난 수재였다.
곡성에서 태어나, 곡성중앙초·곡성중학교를 거치며 학업에 두각을 나타난 박씨는 전남과학고도 2년 만에 졸업하고 연세대 대기과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도 자신보다 몇살 많은 대학동기생을 제치고 해마다 장학금을 타내 부모의 시름을 덜었다.
대학을 졸업을 앞둔 박씨는 국제 환경전문가가 되기 위한 자신의 꿈을 위해 지난해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대학원 한국경제학전공 석사과정에 지원, 올해 3월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박씨의 집안에는 우환이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암에 걸려 췌장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주변 장기로 전이된 암세포 탓에 오랜 항암치료를 받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아픈 아버지 옆을 병간호하던 박씨는 고민이 깊어졌다.
아버지 수술비도 감당하기 버거운 집안 형편인데 1년 학비 3천700만원, 매달 250만원가량의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사회복지시설에 일하는 어머니의 퇴직금을 미리 받아 통장에 넣어 영국 비자는 겨우 받았지만, 출국 며칠 전까지 박씨는 답답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박씨는 출국을 이틀 앞두고 펜을 집어 들고 자신의 처지를 한 자 한 자 편지글로 옮겨적었다.
그리고 곡성군청을 찾아 군수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맡기고 왔다.
편지를 건네받은 유근기 곡성군수는 휴일인 일요일에 군청에 출근해 박씨를 불렀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참 바른 청년이다. 이런 학생은 군에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유 군수는 지자체가 직접 도울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사연을 곡성 내 지역신문에 알렸다.
이후 두 편의 기사가 신문 지면에 실려 곡성군 주민들에게 입소문처럼 퍼져나갔지만, 곡성군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종류의 일이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유근기 군수는 이에 '보이지 않은 손'을 바삐 움직였다.
동창회, 향우회 관계자에게 잇따라 연락해 사연을 설명하고 성금 모금에 함께하자고 설득했다.
이렇게 1천여만원의 성금이 모이자 곡성군 주민의 십시일반 정성에는 불이 붙기 시작했다.
곡성군 간부, 이장단, 사회단체, 지역 기업, 주민 등 40여개 단체(추정) 수백명의 사람들의 보낸 성금이 4천500만원이나 됐다.
일단 영국으로 출국해 학업을 시작한 박씨는 가족으로부터 전해 들은 기쁜 소식에 "너무 고맙고, 책임감을 느낀다"며 "도움을 준 곡성 사람들의 은혜를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2년은 걸리는 석사과정도 학비 절약을 위해 1년 만에 마치려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매일 오후 11시 30분까지 공부하고 기숙사로 가는 길에 한국에서는 오전 8시 30분 하루를 시작하는 부모에게 매일 같이 전화를 걸어 하루하루 소식을 듣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유근기 곡성군수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곡성군의 인재를 우리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백방으로 노력했다"며 "곡성군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이번 일을 주민들과 동향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공시켜 공동체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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