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안정 70년 후까지 확보해야 할까"…엇갈린 판단
제도발전위 "70년 뒤 적립배율 1배" 주문…복지부 "보험료 너무 높아져" 거부
"천리길 가야 하니 첫발부터 디뎌야" vs "정부가 미래세대 걱정 안 한다"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국민연금 전문가들이 심사숙고 끝에 마련한 '70년 후 국민연금기금 적립배율 1배'라는 재정목표를 정부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재정안정을 위해 천리길을 가려면 국민이 수용할만한 방안으로 첫발이라도 내디뎌야 한다"는 입장이고,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이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시점에서 70년 후 적립배율 1배는 2088년에 보험료를 한 푼도 거두지 않더라도 1년치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기금이 남아있다는 뜻으로, 이를 위해서는 상당폭의 보험료 인상이 필수적이다.
1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제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위해 구성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8월 "재정 목표가 설정되지 않아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 방식 이해에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며 명확한 재정목표 설정을 주문했다.
위원회는 국민연금 신규가입자가 사망하게 될 70년 후에 '적립배율 1배'를 달성한다면 '재정안정화'를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 주기로 재정계산이 진행되므로, 5년마다 재정목표 달성을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선 2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노후연금액의 비율)을 45%로 두고 보험료율은 현행 '소득의 9%'에서 내년 11%로 올리고 단계적으로 18%까지 올리는 방안, 소득대체율을 40%로 두고 내년부터 10년간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5%까지 올리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넉 달 뒤 나온 정부 개편안에는 이런 재정목표가 쏙 빠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4일 재정안정보다 노후소득보장 강화에 초점을 맞춘 4가지 국민연금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70년 뒤의 재정안정을 염두에 두었지만, 제도 설계에 바로 반영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1안은 '현행유지', 2안은 '기초연금 40만원으로 인상', 3안은 '보험료 12%·소득대체율 45%', 4안은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로 요약할 수 있는데, 국민연금 소진 시점은 1·2안 2057년, 3안 2063년, 4안 2062년으로 추산됐다.
국민연금이 현재대로 유지될 경우 2057년에는 소진된다는 제4차 재정추계 결과와 비교하면, 소진 시점은 변화가 없거나 최대 6년 늘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재정목표 설정은 개선 방안 마련에 있어 중요한 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의 현실적인 타당성이나 실용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70년 동안 경제·사회적 변화가 아주 극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서도 "천리길을 가야만 재정이 안정된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천리길 중 백리길을 보여준 것"이라며 "충분하지는 않지만, 첫 스타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출발을 해야 10년, 20년 뒤에라도 재정이든 소득대체율이든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수용성을 강조한 입장이다.
300여개 단체가 모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도 비슷한 인식을 보였다.
이 단체는 "5년마다 재정 점검을 하는데도 매번 70년간의 해법을 한꺼번에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냐"면서 "국민연금이 노후를 든든히 보장한다는 신뢰가 형성돼야 재정적 지속성도 담보될 수 있는데, 재정안정화 주창자들은 역설적으로 제도 신뢰를 위협하면서 지속가능성마저 차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도발전위원회에 참여했던 교수 등 연금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실상 재정안정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국가가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하겠다고 하는데 재정안정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냐"면서 "수용성을 고민하다 기금이 사라지고 보험료율 20∼30%로 뛰어오르면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은 복지제도가 아니라 보험"이라며 "연금을 받으려면 보험료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천천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장기 안정 목표를 세워놔야 후세대가 얼마나 힘들어질지 지표상 수치로 알 수 있고 제도를 보완해갈 수 있다"며 "일본은 100년 후 적립배율 1배 목표를 설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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