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 만나는 세상과 나자신 이야기'…코엘류 '히피'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 코엘류의 신작 장편소설 '히피'(문학동네·장소미 옮김)가 출간됐다.
이번 소설은 1970년대 '히피'로 살아간 코엘류 자신의 청년시절 경험, 깨달음을 얻게 되기까지의 모험과 방황, 사랑과 상처 등이 생생히 녹아든 자전적 작품이다.
'알레프', '불륜', '스파이' 등 주로 여성 주인공 이야기를 담아낸 최근작들과 달리 '연금술사', '순례자' 등 코엘류 초기 대표 소설에서처럼 자아를 찾아 떠난 청년의 여행길을 쫓는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은 작가와 같은 '파울로'다.
그는 두 차례 히피 여행을 떠나는데, 첫 번째에서는 연상의 여자친구와 함께 볼리비아 라파스를 지나 잉카의 옛 도시 마추픽추로 향한다.
첫 여행길에서 '세상은 진실한 교실'임을 깨닫지만, 돌아오던 길에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사건을 겪는다.
2년여 후 진정한 내면 탐구를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난 파울로는 그곳에서 카를라라는 여자를 만난다.
네팔 카트만두로 향하는 '매직 버스'에 탑승하면서 그와 카를라는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다른 길동무들을 만난다.
평행현실을 탐구하는 아일랜드 청년 라이언, 남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환자들을 치유하다 성직자 꿈을 꾸게 된 영국인 의사 마이클, 파울로의 트라우마를 보듬어주는 인도인 운전사 라훌, 68혁명의 혼돈을 벗어나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는 프랑스 부녀 자크와 마리 등이 그 대상이다.
오직 자유와 인생의 진리를 찾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은 '히피 순례' 길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알아가고, 세상과 '나 자신'을 발견해 간다.
"힘은 인간이 지나는 길 위의 온갖 사소한 것들 속에 있다. 세상은 진실한 교실이다. 지고의 사랑이 당신이 살아 있음을 알고서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걸 가르칠 것이다."(42쪽)
"우리는 가만히 머물러 있는 걸 혐오하는 세상에 속해 있고, 그것이 우리가 순례의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이유다."(180쪽)
"사랑이 없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으니까. 사랑 없이 산다는 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또 꿈꾸지 않고 잠자거나, 때로는 아예 잠들지 못하는 것과 같아. 이중으로 잠긴 캄캄한 방 안에서, 열쇠가 있다는 걸 알지만 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 마음 없이 그저 태양이 비치기만을 기다리며 매일을 보내는 것과 같아."(313쪽)
코엘류는 이번 소설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오랜 종족 분쟁, 프랑스의 1968년 5월 혁명의 태동과 확산, 군부 독재, 미국과 러시아 양국 간의 냉전 등 그 시절 역사 및 정치적 상황을 선명하게 묘사한다.
소설 외형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비교적 짧은 여정이지만, 특유의 명문장들을 구사하며 전 세계의 길고 긴 근현대사를 조화롭게 아우른다.
서로 호감을 느끼지만, 속마음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여행 내내 닿을 듯 닿지 않는 파울로, 카를라의 관계와 살아있는 심리묘사는 이번 소설의 묘미다.
코엘류는 '감사의 말'에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제 인물들"이라고 고백하며 "폰타그로사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의 일화를 적었고, 군사독재 정권하에 옥고를 치렀던 다른 두 차례의 경험을 세부적으로 첨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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