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불안한 '땅밑 인프라'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서울=연합뉴스) 지난 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서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열수송관이 터져 1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섭씨 100도에 달하는 고온의 물과 짙은 수증기와 함께 50∼100m 높이로 치솟으면서 주변 일대를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파열된 열수송관은 27년 전인 1991년 일산 신도시 조성 때 설치된 것으로, 녹이 슬고 균열까지 생긴 상태로 2m 깊이 땅속에 묻혀있었다. 분당 등 나머지 1기 신도시들에도 언제든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난방공사의 열 수송관 파열이 올해 분당에서만 2, 3월 두 차례나 발생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땅속에는 열수송관 외에도 상·하수도관, 가스 공급관, 전선, 통신선 등 많은 기반시설이 매설돼 있지만 제대로 된 통합지도조차 없다. 국토교통부가 2014년 8월 서울 석촌 지하차도 도로침하 등 싱크홀 사고가 잇따르자 지하 인프라를 통합 관리하는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구축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리 주체도 시설별, 규모별로 제각각이어서 언제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난달 28일 경기 파주에서는 상수도 공사 중 굴착기가 고압 전선을 건드려 대규모 정전사태로 이어졌다. 우리의 땅 밑이 '지뢰밭'이냐는 말이 나와도 반박이 쉽지 않다.
지하시설물 사고는 국가기간통신망까지 마비시켜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불은 10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유·무선 통신·인터넷 두절은 물론 병원 진료시스템과 카드결제가 한때 마비되는 등 통신 대란이 하루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지하시설물을 종합적으로 관장하는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다. 이러다 보니 대형 사고를 예고하는 전조 현상이 나타나도 늘 땜질식 대응에 그쳤다. 백석동 일대는 지난해 2월 도로에 땅꺼짐(싱크홀) 현상이 발생하는 등 2005년부터 지반침하 사고가 잦았다고 한다. 난방공사 등 관계기관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노후 열수송관의 파열 개연성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지하 통신구 화재도 서울 시내에서만 1994년 종로5가, 2000년 여의도 통신구 등에서 몇 차례 겪었지만, 이번 KT 화재사고를 보면 'IT 강국'이란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재난에 여전히 취약했다.
KT 화재를 계기로 통신 재난 관리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민·관 태스크포스가 지난달 27일 출범했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국토부 등 관계부처와 KT, SKT 등이 참여해 연말까지 사고 재발 방지와 신속한 재난대응책을 마련키로 했다고 한다. TF가 지하 통신구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면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차제에 정부가 지하시설물 전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를 정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길 바란다. '탁상공론'이 아닌 실효적 대책이 나오려면 재난 대응 강국인 이웃 일본처럼 철저한 현장점검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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