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한데 모은 부시 전 대통령…트럼프 '껄끄러운 조우'
부시의 '통합' 작별선물로 트럼프 취임후 전현직 대통령 처음 한자리
트럼프, 조사는 안해…오바마와도 첫 대면·힐러리 눈길 한번 안줘
트럼프, 부시家와 구원 풀고 예우…부시家도 장례식 초대 '화해'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들이 5일(현지시간)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워싱턴DC의 국립성당에서 엄수된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한 이후 전직 대통령들과 이렇게 만난 것은 처음이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워싱턴의 기존 전통과 문법을 거부,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며 전직 대통령과 공공연하게 불편한 관계를 맺어온 트럼프 시대의 단면이기도 하다.
통합의 메시지를 던지고 떠난 부시 전 대통령이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이자 '작별 선물'로 트럼프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을 한데 끌어모은 셈이 됐다. '상주'인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까지 포함해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4명이 모두 모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전임자들 간 껄끄러운 관계를 반영해주듯 '어색한 조우'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워싱턴 국립성당에 도착, 멜라니아 여사의 손을 잡은 채 중앙홀로 천천히 걸어들어와 먼저 도착해 있던 전직 대통령 부부들과 같은 맨 앞 줄로 안내받았다.
이 자리엔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자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 상대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 옆으로 멜라니아 여사가 자리를 잡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옆으로 가장 가장자리에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외투를 벗은 뒤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사이에 두고 손을 뻗어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만난 것은 취임식 이후 처음이라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그러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클린턴 전 장관에게도 손짓으로 인사를 건넨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클린전 전 대통령 부부와는 서로 아는 척하지 않은 채 '구원'을 그대로 노출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살짝 곁눈질로 트럼프 대통령 쪽을 쳐다보는 듯했으나 부인 클린턴 전 장관은 아예 트럼프 대통령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미동 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다만 클린턴 전 장관은 멜라니아 여사에게는 살짝 목례를 하며 인사를 받아주는 제스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맨 안쪽에 있던 카터 전 대통령 부부와도 별다른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클린턴 전 장관 사이에 '찬바람'이 쌩쌩 분 것을 두고 의회 전문매체 더 힐은 "지난 대선 레이스 당시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못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CNN방송은 이날 전·현직 대통령의 '회합'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생존해 있는 전임자들을 대면했다"며 어색하고 불안한 '대통령 클럽' 모임이 이뤄졌다고 표현했다.
CNBC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의 정치적 소란을 감안할 때 전·현직 대통령이 한자리에 모인 오늘은 매우 비범한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적진 대통령들에 대한 비난으로 미국 역사상 대통령 출신 인사들 사이에 이어져 온 우애와 친목 모임의 전통을 깨트렸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과 만나는 자리를 피해왔으며 국가 원로로서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을뿐더러 공개적 비난을 멈추지 않아 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지난 대선에서 자신과 맞붙었던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해서는 '사기꾼 힐러리'라는 '모욕적 별명'으로 부르며 트윗을 통해 끊임없이 공격을 가해왔다. 최근에는 미셸 오바마 여사가 저서에서 자신을 비판한 것을 두고 장외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생전에는 부시가와도 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 있지만, 그의 타계 후 극진히 예우하며 관계 회복에 나선 모습을 보였다.
부시가도 트럼프 대통령을 장례식에 초대하는 한편 장례식이 자칫 지난 8월 타계한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장례식 때처럼 '반(反) 트럼프' 성토장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장례식에서 정치적 색채를 최대한 빼고 고인의 삶을 조명하는데 방점을 둔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조사를 낭독하진 않았다.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장례식이 시작하기 전에 부인 로라 부시 여사와 함께 '대통령 좌석'으로 찾아가 트럼프 대통령 및 전직 대통령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hanksong@yna.co.kr
[로이터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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