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의혹' 말레이 前총리, 측근에 책임전가…"난 몰랐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전 총리가 모든 책임을 측근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3일 말레이시아 언론에 따르면 나집 전 총리는 전날 현지 매체 시나르 하리안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끌던 전 정부가 금융업자 로 택 조(37·일명 조 로우)에게 속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고려할 때 그것이 사실이자 결론"이라면서 "그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 명백하다면 반드시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집 전 총리는 2009년 설립한 국영투자기업 1MDB를 통해 수조 원대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돼 내년 2월부터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측근으로 비자금 조성 및 실무를 담당했던 조 로우는 해외로 도주해 현재는 중국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집 전 총리는 "조 로우가 1MDB의 전신인 트렝가누 투자 당국(TIA)의 자문위원으로 초빙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면서 당초엔 조 로우가 가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재무장관과 1MDB 이사회장을 겸임했던 나집 전 총리는 이 과정에서 "변호사와 감사, 유명 국제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선임해 말레이시아의 이해를 살피게 했다"면서 "그들이 실패했는데 어떻게 내가 (1MDB의 문제점을) 알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조 로우가 빼돌린 공적자금으로 수천억 원짜리 호화요트를 사는 등 사치 행각을 벌인 데 대해선 "나중에야 알았다"면서 "그와는 순전히 직무상 관계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집 전 총리는 올해 5월 총선에서 참패해 권좌에서 밀려나기 전까지만 해도 1MDB에서 공적자금이 횡령됐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현지에선 나집 전 총리가 궁지에 몰리자 책임 전가에 급급해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다만, 골드만삭스의 경우 실제로 1MDB 스캔들에 깊이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법무부는 최근 1MDB의 자금유용에 관여한 혐의로 골드만삭스의 동남아시아 사업 대표였던 팀 라이스너와 전직 직원인 로저 응 등 두 명을 기소했다.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이끄는 말레이시아 신정부는 골드만삭스가 1MDB의 대규모 채권 발행 과정에서 6억달러(약 6천700억원)에 육박하는 과도한 수수료를 챙겼다면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부펀드 국제석유투자(IPIC)도 지난 21일 골드만삭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IPIC는 1MDB가 발행한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다가 수조 원대의 손실을 떠안는 처지가 됐다. IPIC는 소장에서 골드만삭스가 신원불명의 말레이시아인과 공모해 IPIC 전 경영진을 매수함으로써 IPIC에 해가 되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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