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김씨'에 여권 지형 요동…민주당 균열 도화선 되나
친문 주류 vs 비주류 지지층 분화 관측도…이재명 탈당론 도사려
"이러다 여권 갈수록 부담" 위기의식…차기 대권구도 영향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인생에 최대위기를 안긴 이른바 '혜경궁김씨' 사건으로 여권이 동요하고 있다.
일단 이 지사가 사면초가에 처한 자체가 당으로선 대형악재다. 이 지사는 이미 숱한 상처를 입었지만 여론조사 상으론 여전히 여권의 차기 유력 주자군에 포함된 인물이다. 그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중 진보 사이드를 견인하는 왼쪽 날개의 주요 인사이기도 하거니와 비주류의 핵심 주류이기도 하다.
당장 이번 사건이 그간 잠복했던 친문(문재인) 주류 세력 대 비주류 세력의 고질적 갈등을 다시 불러들여 여권 내 파워블록 분화와 지지층 균열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번 사태의 골간에는 이 지사와 문재인 대통령 핵심 지지층이자 현 여권의 최대 지지기반이기도 한 친문 진영 사이의 뿌리 깊은 반목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날을 세우며 정치적 존재감을 키운 이 지사를 놓고 '골수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는 같은 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정서가 팽배했고 이런 반감이 민주당의 지난 경기지사 후보 경선 과정에서 혜경궁김씨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논란이 급기야 고발로 번져 이번 사태로까지 연결됐다는 점에서, 이 지사와 골수 친문을 양 극단으로 여권의 원심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불가피하게 뒤따른다.
게다가 이 지사는 19일 입장발표를 통해 부인 김혜경씨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며 오랜 법정 싸움을 예고했다. 정치적 공격이라고도 했다.
드러내 지목하진 않았지만 살아있는 권력에 의한 피해자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듯한 태도로 미뤄 볼 때 여권 내부로 칼을 겨냥했다는 해석마저 가능한 대목이다.
벌써 당내에선 주류 진영을 중심으로 이 지사에 대한 강한 거부정서가 표출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 지사 탈당론까지 거론한다.
당 지도부는 사태를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지만 내부에 불씨를 계속 둬서는 화만 더 키울 거라는 우려에서다.
1년 반 남은 총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동시에 지속해서 하락하는 상황인 점도 내부 결속에 무게 중심을 옮겨놓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기도 하다.
5선 중진인 이종걸 의원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무죄 추정 원칙으로 재판 결과가 나온 후 조치를 취하는 방법으로는 정쟁만 장기화·격화된다"며 "당이 조사단을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구나 이번 경찰 수사결과를 두고 이 지사가 사정 당국의 탄압을 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점도 여권으로선 부담이다.
이틀간 두문불출하던 이 지사는 이날 "명백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김영환(바른미래당 전 경기지사 후보)에 대해선 그렇게 관대한 경찰이 이재명 부부에겐 왜 이렇게 가혹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지사의 말대로 경찰의 수사 결과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다 해도 이는 이대로 더 큰 정치적 역풍을 몰고 올 수 있어 민주당으로선 결론이 어떻든 정치적 피해가 만만치 않다.
이 지사는 진보진영의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됐던 만큼 여권의 차기 대권 구도도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미투' 파문에 휘말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이 지사까지 타격을 입으면 여권내 사실상 비주류 후보가 사라지며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상대적으로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권 구도가 새로 짜여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전국 성인 2천5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한 결과, 범진보 진영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이 지사는 이 총리(16.0%)에 이어 2위(9.5%)를 기록한 바 있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당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야 하나 당장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도 '일단 지켜보자'는 태도를 고수 중이어서 파문은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한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 어렵다 보니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는 외에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며 "당으로서도 여러모로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goriou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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