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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 "이해 안 되는 사람도 들여다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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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 "이해 안 되는 사람도 들여다보고 싶어요"
'제리''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로 호평…첫 소설집 '청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질풍노도의 청춘을 그린 장편소설 '제리'로 '오늘의 작가상'을,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로 수림문학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작가 김혜나(36)가 첫 소설집을 냈다.
단편 5편과 중편 1편을 모은 '청귤'(은행나무 펴냄).
표제작인 '청귤'에서는 주인공 화자인 소설가 '지영'이 대학 때 만난 친구 '미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영은 늦깎이로 들어간 지방 대학에서 역시 나이가 많은 미영과 가까워졌는데, 미영은 조금 다른 세계에서 사는 듯 보이는 인물이다. 빼어난 미모로 대학 시절에도 내레이터 모델 일을 해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했고, 룸살롱을 운영하는 남자친구와 만나 오래 사귄 끝에 결혼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차갑지만, 지영에게만은 따뜻하게 대해준다. 작가, 지식인의 삶을 은근히 동경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번은 지영을 따라 교수가 초청한 미술 전시회에 갔다가 나이 지긋한 남성 화가로부터 노골적인 구애를 받게 되고 "우리 아빠보다도 더 처먹은 XX가…"라며 분개한다.
"네가 오늘 나한테 전시회 가자고 해서 정말로 기뻤어. 너 그거 알아? 내 친구들 중에는 아무도 나한테 이런 데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어. (…) 네가 나에게 같이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 나는 다 만날 수 있어.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이래, 우리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인간들이, 교수라는 인간들이, 예술 한다는 인간들이, 네가 아는 인간들이 왜 나한테…."
미영은 또 룸살롱을 하는 남편과 그 친구들이 데리고 다니는 여성 종업원들을 멸시하는데, 지영과 함께 놀러 간 장소에 그런 종업원들이 따라와 지영에게 대뜸 반말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그들을 피가 나도록 때린다.
오랜만에 만난 미영은 '작가님' 소리를 듣는 지영에게 "너는 진짜 귤 같다"며 자신은 여름에 나는 청귤처럼 신기하고 탐나지만, 실은 "쓰고 시고 딱딱해서 먹을 수 없는" 청귤과 비슷하다고 자조한다.
김혜나 작가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미영처럼 자신을 청귤 같은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 겉으로 보면 다소 이상해 보이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다고 했다.
"미영은 왜 그 여자들(룸살롱 종업원)을 싫어할까, 왜 저렇게 폭력적으로 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이해되지 않고 공감할 수 없는 사람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돼요. 그냥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이라고 외면하면 그만인데, 들여다보면 그 사람에게도 다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고 상처가 있고 숨겨진 뭔가가 있거든요. 그렇게 감춰진 것들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갈등을 해결해 나갈 수 있잖아요. 그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해받지 못해서 괴롭고, 사소한 위로 한 마디가 필요한데 그걸 못 받아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고요.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로레나'는 우리 사회에 공존하면서도 쉽게 타자로 분리되는 이주민, 이주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 주인공의 가족과 친척들은 필리핀에서 머물렀던 삼촌을 따라 한국에 온 여성 로레나를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해주지 않는다.
'이야기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머리가 나쁘고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가족 내에서조차 소외당한다. 주인공은 어릴 때 부모의 부주의로 병을 앓고 후유증으로 사시 증상을 얻은 이야기로 시작해 자신이 이렇게 못나게 된 게 생각해보니 다 부모 탓이라며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이 소설에는 이야기하기, 소설 쓰기 자체에 관한 고민도 담겨있다.
"이야기 자체에 대해 접근하고 싶었어요. 이야기란 게 뭔지. 우리가 같이 있을 때 한 사람만 계속 말하면 듣기가 피곤하잖아요. 결국 이야기는 서로 소통하는 것인데, 글 쓰는 것 역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해요. 이야기, 소설이 이 사회와 세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소설이 어떤 대답이 될 수는 없고, 인간이라는 게 뭘까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고민하고 궁금해하는 것들을 같이 고민해보자는 의도로 쓰는 거죠."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받은 이들의 고통이 강렬하게 그려진 작품들도 눈에 띈다. 데뷔 이후 그의 소설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존재를 개념이나 추상으로 나타내려는 작가들이 있다면 김혜나는 철저히 육체로 뽑아낸다"며 "불확실한 기억과 싸워낸 상처와 흉터들로 삶의 의미와 그 알리바이를 찾아가는 인물들. 그 인물들을 통해 김혜나는 고통이 곧 삶의 증명임을 보여준다. 만약, 김혜나의 소설이 이 공허하고 궁핍한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위안이 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라고 말했다.
작가는 자기 소설의 '육체성'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소설이 사실적인 것을 좋아해요. 제가 쓴 이야기가 진짜로 보였으면 좋겠고요. 가끔 감정을 아무리 절절하게 써도 독자에게 잘 가닿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육체적으로 느끼는 감각들, 그 아픈 느낌은 모두가 경험으로 알잖아요. 그렇게 모두에게 공감 갈 수 있게 하는 매개가 결국 육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제가 요가를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육체는 결국 눈에 보이는 마음이고, 마음은 보이지 않는 육체란 생각이죠. 그래서 직접 눈에 보이고 감각이 있는 육체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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