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에 맞선 청춘의 분투…수림문학상 '콜센터' 출간
김의경 장편소설…콜센터서 일하는 20대 꿈과 좌절 생생히 그려
"핍박과 궁핍에 굴하지 않는 청춘의 진군가"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공동 제정한 수림문학상 제6회 수상작 '콜센터'(광화문글방)가 출간됐다.
김의경(40) 작가의 이 장편소설은 피자 배달 주문 전화를 받는 콜센터를 배경으로 20대 젊은이들의 꿈과 좌절, 우정과 사랑 이야기 속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과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감정노동' 실태를 생생하게 그렸다. 작가가 실제로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소설 주인공 주리는 콜센터에서 1년 8개월째 일하는 중이다. 영문학 전공에 경영학 복수전공을 해 졸업한 뒤 끊임없이 수많은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학자금 대출까지 남아 그동안 돈을 벌려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으나, 몸이 고된 일은 취업 준비를 병행하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인 콜센터 상담원은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남는 시간에 영어공부 등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에도 수십 통씩 전화를 받아 온갖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엄청난 '감정노동'일 수밖에 없다. 모멸감을 주는 말과 욕설, 성희롱이 빈번하고, 자기 분풀이를 하거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일부러 상담원을 괴롭히는 악질적인 사람들도 있다. 또 콜센터 관리자들은 상담사들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는 등 노동 조건도 열악하다.
"작은 부스에 여고생부터 사오십대 주부까지 담담한 척 앉아 있지만 귓속으로 파고드는 온갖 배설물을 홀로 외롭게 처리하고 있는 셈이었다. 주리는 실장의 눈치를 보며 화장실에 다녀올 기회를 엿보았다. 주리는 몸을 낮게 숙인 채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에 앉기도 전에 누군가 화장실 문을 세게 두드렸다." (11쪽)
취업할 때까지만 참자며 버티는 주리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존재는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용희와 시현, 형조, 동민 등 또래 친구들은 모두 하루빨리 취업하거나 꿈을 이루고 싶어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소설은 이들의 이름을 각 챕터 소제목으로 삼아 각자의 이야기를 균형 있게 들려준다.
그러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 방송사 아나운서를 꿈꾸던 시현은 꿈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해하던 차에 한 진상 고객에게 계속 시달리자 감정이 폭발한다. 부산 해운대가 주소인 그 진상 고객에게 찾아가 복수하겠다고 선언하고, 시현을 짝사랑하는 동민과 콜센터에서 벗어나기만을 꿈꾸던 주리, 용희, 형조 역시 합세한다.
이 시대의 그늘을 드러내면서도 마냥 어둡고 무겁지만은 않다는 점이 이 소설의 미덕이다. 청춘물이 지니는 경쾌함과 유머, 긴장과 설렘, 활기도 품고 있다.
수림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성석제 작가는 "핍박과 궁핍에 굴하지 않는 청춘의 진군가. 눈물겹고 맵싸하고 아리면서도 감상적이지 않고 섬세한 디테일이 밑받침된 긍정의 에너지가 강렬하다"고 평했다.
작가는 14일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4∼5년 전에 저는 피자 프랜차이즈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했습니다. 당시 한 동료가 블랙컨슈머는 우리를 로봇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해서 저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로봇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 애쓰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상담사들이 자신과 같은 영혼과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대신 복수하도록 만들었는데, 그 장면에서 더 큰 불쾌감과 슬픔을 맛보게 됐습니다. 18일부터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는데, 이 소설이 감정노동자들의 노고를 돌아보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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