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논란 일자 1차대전 공식 추모대상서 페탱 제외키로
페탱, 1차대전 승리 주역이었지만 2차대전 때 나치와 강화…괴뢰정권 세워
마크롱 "페탱, 위대한 군인이었다" 발언…논란 거세지자 추모방침 철회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정부가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한 필리프 페탱(1856∼1951)을 1차대전 승전 100주년 기념식의 추모 대상에 포함해 논란이 일자 방침을 철회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페탱이 1차대전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위대한 군인"이었다면서 2차대전 때의 과오와는 별개로 1차대전 공식 추모 대상에 포함한다는 계획이었다.
벤자맹 그리보 프랑스 정부대변인은 7일 밤(현지시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페탱에 대한 어떤 추모도 없을 것"이라면서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은 장군들만이 공화국의 추모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프랑스 정부는 오는 10일 파리 시내 복합군사문화공간 앵발리드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1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군의 장군 8명을 국가 차원에서 추모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8명의 장군 중에 필리프 페탱이 포함된 것이 문제가 됐고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마크롱은 7일 프랑스 북부의 1차대전 격전지 샤를빌 메지에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장군들을 추모하는 것은 옳다"면서 페탱에 대해 "그가 위대한 군인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마크롱은 그러나 2차대전 때에는 페탱이 "재앙 같은 선택을 했다"면서 그에게 공과 과가 모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논란은 거세졌다.
프랑스유대인협회가 비난 성명을 발표했고, 야권에서도 역사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페탱은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논란이 현재진행형인 인물이다. 1차대전과 2차대전 때의 행보가 정반대로 엇갈렸기 때문이다.
그는 1차대전 당시 1916년 격전지였던 베르덩에서 독일군을 저지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고, 페탱의 전공은 연합군이 1차대전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차대전이 끝나고 페탱은 '프랑스의 원수(元帥)'라는 칭호를 받으며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지만, 2차대전이 터지고 프랑스가 1940년 5월 독일에 점령당하자 히틀러와 강화를 주장했고, 남부 비시에 나치에 협력하는 부역 정권까지 세웠다.
페탱은 프랑스의 공화정을 폐지하고서는 비시정부의 국가수반이 되어 나치의 도움으로 프랑스 남부를 통치했다.
페탱이 당시 내세운 논리는 나치와의 강화를 통해 프랑스군의 전멸을 막고, 나치의 완전지배를 받기보다는 최소한의 선에서 협력해 프랑스를 보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현실론'이었다.
페탱은 그러나 나치가 레지스탕스(대독항전) 대원들을 색출하고 유대인들을 붙잡아 강제추방해 아우슈비츠 등 수용소로 보내는 데 협력해 프랑스로서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의 역사를 남겼다.
2차대전이 나치의 패배로 귀결된 뒤 그는 1945년 전범재판에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종신형으로 감형돼 복역 중 1951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한편, 1차대전 종전 기념식이 열리는 10일에는 마크롱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양자 정상회담도 함께 열린다.
백악관과 엘리제궁에 따르면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시리아 사태와 이란 핵 문제 등 중동의 안보현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다음날인 11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전 세계 정상급 지도자 60여 명과 함께 파리 개선문에서 열리는 1차대전 종전 100주년 공식 기념식에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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