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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재 이겨내자"…제재 전날 테헤란서 미 대사관 점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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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재 이겨내자"…제재 전날 테헤란서 미 대사관 점거 집회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이 이란에 대한 2단계 제재를 복원하기 하루 전인 4일(현지시간) 오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대규모 반미 집회가 열렸다.
공교롭게 이날이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이란의 대학생들이 점거한 날을 기념하는 '학생의 날'이기 때문이다.
매년 테헤란에선 학생의 날에는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이라는 '역사적인 승리'를 자축하고 상기하는 집회가 옛 미 대사관 건물 앞 도로에서 대대적으로 열린다.
이날도 테헤란 시민뿐 아니라 지방에서 학교 단위로 올라온 학생들로 옛 미 대사관 앞 도로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란에서 2월에 열리는 이슬람혁명 기념집회, 라마단 마지막 주에 열리는 쿠드스(예루살렘)의 날과 함께 규모가 큰 대중 정치 행사다.
1979년 2월 팔레비 왕정을 몰아낸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세력은 미국을 부패한 왕정의 배후로 지목하고 반미 감정을 사회 곳곳에 불어넣었다.
11월 4일 아침 7시부터 미 대사관 앞에 400여 명의 대학생이 모였고 이들은 "미국에 죽음을", "카터를 죽여라"라고 외쳤다.
대표자 몇몇이 대사관 진입계획을 세웠다.
한 여학생이 검은 차도르 안에 숨긴 절단기로 정문 쇠사슬을 끊으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처음엔 상징적인 수준으로 점거 농성을 잠깐 벌이려고 했지만, 오전 10시께 정문이 뚫리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대학생 수백 명이 쇠창살에도 개의치 않고 4m 정도의 담을 넘었고, 순식간에 미 대사관을 점거했다.
혁명 지도자 이맘 호메이니는 처음엔 이를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 밤 "두 번째 혁명이 성공했다. 미 대사관은 간첩의 소굴이다"라고 지지함으로써 이란 혁명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들은 미국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무려 444일간이나 인질로 잡고 '대미 항전'을 벌였다. 미국과 이란의 국교가 끊어지고, 하루 앞으로 임박한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의 시효가 됐다.
미국은 '다시는 이란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합의해주고 굴욕적인 석방 협상을 맺었다.

미국은 할리우드 영화 '아르고'에서처럼 혁명군을 교란하고 구출 작전을 성공했다는 영웅담으로 1979년을 포장하려 하지만 이란에선 미국에 승리한 날로 기록한다.
이란이 미국에 직접 타격을 가한 유일한 사건이기도 하다.
보통 이란에서 열리는 반미 집회에선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지만 학생의 날 집회는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다소 익살스럽게 미국을 조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음날부터 미국의 제재가 시작돼서인지 이날 집회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퍼포먼스가 자주 눈에 띄었다.
집회에 참석한 모하마디(61)씨는 "미국의 제재는 심리전일 뿐이다"라며 "우리는 혁명 뒤 40년간 미국의 제재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이라고 해서 새로운 것은 아닌 만큼 혁명의 정신으로 또다시 이겨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의 연사로 나선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트럼프 당신, 이란을 절대 협박하지 마라. 미국 병사는 이란을 만나기만 하면 겁에 질릴 것이다"라며 "미국의 마지막 선택이 소위 경제 전쟁인데 제재는 쓸모없고 패배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성조기와 이스라엘기, 트럼프의 허수아비에 불을 붙이자 군중이 환호했다. 미국 달러화를 그린 현수막을 도로에 깔고 그 위를 짓밟으며 지나가는 구간도 마련됐다.
반미 집회에서 언제나 들을 수 있는 "마르그 발르 움메리카"(미국에 죽음을), "마르그 발르 에스라일"(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도 쉴새 없이 대형 스피커로 방송됐다.
미국이 사상 최대로 압박하겠다고 위협한 이번 제재를 하루 앞두고 심각해질 경제난의 시름을 잠시 잊고 '정신 무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했다.


hskang@yna.co.kr
[로이터제공]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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