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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리즘' 지고 '트럼피즘' 뜨나…전환점 맞은 세계 정치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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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리즘' 지고 '트럼피즘' 뜨나…전환점 맞은 세계 정치지형
'EU 최장수 지도자'·'서방 자유주의 보루' 메르켈 퇴장에 EU 위기감 팽배
보우소나루 '극우돌풍' 일으키며 브라질 정권 장악…극단주의 포퓰리즘 득세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보우소나루의 등장'과 '메르켈의 퇴장'이라는 변수가 동시 교차하면서 세계 정치지형이 중대한 변곡점에 올라선 양상이다.
당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21년까지인 임기를 끝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힘에 따라 유럽연합(EU) 중심의 서방 자유주의 진영의 한 보루가 또다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메르켈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보호무역 기조를 견제하는 EU의 최장수 지도자였다는 점에서 앞으로 EU의 항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됐다.
이는 그러나 단순히 EU라는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전세계 정치지형의 변화 기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권과 환경 등 민주주의 가치와 다자주의적 협력을 중시하는 중도·온건 정치노선이 약화되고, 자국 우선주의와 반(反) 이민 정서를 앞세우는 '극우 포퓰리즘'이 판치는 양상으로 글로벌 정치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NN방송은 이를 브라질 새 대통령에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며 극우 돌풍을 일으킨 자이르 보우소나루(63) 후보가 당선된 것과 함께 묶어 '메르켈리즘의 퇴조와 트럼피즘의 번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서방 자유주의 진영 내에서 미국과 러시아 모두를 견제하고 보수 진보 가치를 아우르며 균형을 잡아왔던 메르켈 총리의 부재는 뼈아플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여기에 메르켈 총리가 사라지면 유럽에서 득세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을 어떻게 견제할지, 난민·이민자 유입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뒤따르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위상 약화는 이미 EU 안에서도 주목받고 있었다는 게 영국 일간 가디언지의 관측이다. 지난해 연정 구성을 위한 메르켈 총리의 지난한 노력과 난민 문제를 둘러싼 연정 파트너 기독사회당(CSU)과의 충돌은 나머지 유럽국가들에서도 메르켈 총리의 명망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연정 안에서의 갈등은 독일이 지난 8개월간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는 법안에 대한 입장을 여전히 확정하지 못한데서도 드러난다.
여기에 EU 회원국 정상중 최장수 지도자로서 메르켈 총리의 퇴조는 그의 후임자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언제 교체될지에 대한 의문으로 다른 회원국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결국 EU에서 독일의 역할이 약해질 것은 분명해졌다. EU는 현재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협상, 유로존 개편 협의, 이탈리아 예산 문제, 러시아와 관계 설정 등 중차대한 현안들을 남겨놓고 있다.
재니스 에마눌리디스 유럽정책센터(EPC) 소장은 "이미 수년, 몇개월을 거치며 약해진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권위가 다시 강해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는 특정 영역에서 독일이 빠진 공간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2월 EU 정상회의에서 메르켈 총리의 주도로 유럽 공통의 난민정책을 마련하고 내년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로존 개혁을 이끌 기회로 삼으려는 기대가 있었으나 이마저 어려워졌다.
에마눌리디스 소장은 "EU가 정해야 할 매우 까다로운 결정들이 있었다. (메르켈 총리의 위상 약화는)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을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약체화가 유럽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패턴으로 나타나는 점은 우려스럽다. 즉, 기존 정당체제에 대한 신임도 감소, 급진 좌파나 극우파에 대한 지지도 상승, 정치적 분열 같은 요소가 유럽 전체에 나타나고 있다.
신문은 이런 모든 요인들이 EU 28개 회원국 정부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2016년 이후 자유민주주의 및 자유무역 질서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 인물이어서 이 같은 불안감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2016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메르켈 총리는 민주주의와 법에 대한 존중, 인간 존엄성에 입각한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 부채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며 브렉시트 투표 직후 EU 단일시장의 4가지 원칙(노동·자본·상품·서비스 이동의 자유)을 재확인시키며 EU를 지켜낸 인물이기도 하다. EU는 그 이후로 메르켈 총리에 줄곧 매달려왔다.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카네기 유럽'의 주디 뎀시 연구원은 "메르켈 총리는 유럽이 원하는 장기 전략에 따라 독일내 반미정서를 차단하면서도 대(對) 러시아 제재를 위한 유럽의 단일대오를 이끌어왔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퇴임 후 EU의 직책을 맡을 가능성도 예견된다. 내년 교체 예정인 차기 EU 집행위원장이나 유럽이사회 의장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독일 현지언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EU 직책에 대한 관심을 부인했다.
유럽의회의 한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메르켈 총리는 진짜 독일인이다. 그 말 그대로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메르켈의 퇴장 이후 EU 지배구조의 변화는 세계 정치지형의 대전환과 맞물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관용의 정치'와 다양성을 중시해온 유럽 정치권에서의 '극우 돌풍'은 미국과 중남미 주요국가들의 정치 변화와 동시에 호응하면서 세계 정치의 무게추를 극단적 포퓰리즘 쪽으로 기울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스트롱맨'(철권통치자) 지도자들이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면서 '분열의 정치'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대두하고 있다. 이와 관련, CNN은 중남미와 인도에서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많은 우파 정당과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보수주의의 빛나는 수호자로 간주하면서 경의를 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joo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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