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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포사회·학계서 우리 독립운동사 발자취 찾기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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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포사회·학계서 우리 독립운동사 발자취 찾기 '활발'
소장학자 이장규씨, 프랑스서 잇따라 독립운동 사료 발굴 '성과'
파리7대 중심 한·불학회 '리베르타스' 결성…우리 독립운동사 연구 매진
김성영·송은혜씨 부부 '잊혀진 독립운동가' 홍재하 차남 찾아내 재조명 도와



(생브리외[프랑스]=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일본강점기 프랑스 내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가 내년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최근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추적해온 소장학자가 올해 들어서만 주목할 만한 사료를 잇달아 찾아낸 데 이어, 최근에는 '잊혀진 독립운동가' 홍재하(1898∼1960)의 궤적이 뜻있는 프랑스 교포들의 노력으로 최근 구체적인 실상이 확인됐다.
프랑스는 그동안 중국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가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최근 들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활동과 100년 전 결성돼 독립운동을 도운 한인단체 '재법한국민회'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프랑스에서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동포들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올해 초 재불 독립운동사학자 이장규 씨(파리 7대학 박사과정)는 파리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소도시 쉬프(Suippes)에서 100년 전 거주하던 한인들의 명단을 프랑스 지방정부 자료로 최초로 확인했다.
이씨가 프랑스 지방정부 자료실을 뒤져 최근 찾아낸 1920년 쉬프시 외국인명부엔 박춘화·박단봉·차병식 등 한인 37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프랑스 도착 일자, 프랑스에 체류증을 신청한 날짜, 직업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 치하에서 외국의 한국인들이 일본이나 중국 국적자로 활동했던 것과 달리 이 명부에는 한인들의 국적이 한국인(Coreen)이라고 정확하게 기재됐다.
국제사회에서 당시 한국은 일제의 침략으로 이미 소멸한 나라였기 때문에 한인 노동자들이 한국 국적으로 프랑스의 체류허가를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당시 존재한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끈질긴 노력 덕이 컸다.
조국을 빼앗기고 연해주와 북해, 영국을 거쳐 프랑스로 건너온 한인들은 1차대전 격전지였던 베르덩 인근의 소도시 쉬프에서 전후 복구에 참여했다.
베르덩 전투에서 독일·프랑스는 70만 명에 가까운 전사자를 냈는데 한인들은 전사자 시신을 수습해 묘지를 조성하는 고된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렇게 번 돈을 모아 임시정부에 자금을 댔고, 1920년에는 프랑스에서 3·1 운동 1주년 기념식도 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장규 씨는 지난달엔 베트남의 호찌민(胡志明·1890~1969)이 파리 체류 당시 우리 임시정부 인사들과 교류하며 약소국의 설움과 독립투쟁의 의지를 교감한 것을 보여주는 자료도 찾아냈다.
파리의 정보경찰 장(Jean)이라는 인물이 1919~1920년 작성한 감시보고서에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호찌민의 일거수일투족뿐 아니라 그와 교류한 우리 임시정부 인사들의 활동상도 생생히 기술돼있다.
이 씨는 프랑스 경찰 보고서에 담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황기환 서기장, 김규식 대표 등의 흔적을 프랑스국립해외영토자료관(ANOM)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져 찾아냈다.
프랑스에는 파리 7대 한국학과 마리오랑주 리베라산 교수를 중심으로 한불독립운동사 연구회 '리베르타스'(Libertas)가 작년 말 출범해 이런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한국학자들은 물론, 국민대 장석흥 교수 등 국내 독립운동사학자도 참여한 이 학회는 프랑스 내 국립도서관과 자료관에 흩어진 한국 독립운동사 사료 발굴과 연구에 힘쓰면서 유럽 내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의 중심축으로 도약했다. '리베르타스'는 '자유' 또는 '독립'을 뜻하는 라틴어다.
리베라산 교수는 "한국의 독립운동은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이 돋보인다. 특히 3·1 운동은 그 시대에 보기 드물게 비폭력을 지향했는데 이는 프랑스에서도 보기 힘든 숭고한 정신"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삶의 궤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독립운동가 홍재하의 삶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도 프랑스 브르타뉴지방 한인회장인 김성영(렌 경영대 교수)·송은혜(렌2대 강사)씨 부부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홍재하는 일본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러시아, 북해, 영국을 거쳐 1919년에 프랑스로 건너온 뒤 프랑스 최초의 한인단체 '재법한국민회'의 2대 회장을 지낸 인물로, 당시 임시정부에 자금을 댄 독립운동가였지만 그 존재와 활약상이 거의 잊혀 있었다.
홍재하의 차남 장자크 홍 푸안(76)씨를 지역사회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김성영·송은혜 씨는 현재 장자크 씨를 도와 홍재하가 남긴 수백 건의 기록물 등 독립운동사의 사료가 될만한 자료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이들은 렌의 한인 유학생들과 함께 홍재하의 독립운동 공적이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될 때까지 장자크 씨를 가까이에서 도울 생각이다. 또 내년에는 이 자료들을 정리하고 전문가 검토를 거쳐 프랑스 내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와 콘퍼런스도 프랑스에서 개최할 생각이다.
김성영 교수는 "홍재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해 독립운동 공적이 제대로 인정되면 좋겠다. 우리도 프랑스에서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가 이렇게나 활발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때 장자크 씨는 김 교수 부부의 도움으로 문 대통령이 파리에서 연 동포간담회에 정식으로 초청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프랑스 내 독립운동사를 열심히 발굴 조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참으로 다행스럽다. 해외의 독립운동들은 아직 묻혀 있고 발굴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정부도 열심히 발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망국의 한을 품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대한독립 투쟁을 이어간 조상의 발자취를 찾아내려는 후손들의 노력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이처럼 계속되고 있다.
yongl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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