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포드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재능 발휘하죠"
미국 대표 작가…박경리문학상 수상으로 내한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이렇게 재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국 당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리처드 포드(74)는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박경리(1926∼2008)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국제 문학상 '박경리문학상' 올해 제8회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그는 "내가 이런 훌륭한 상을 받는 것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 어떤 삶의 여정을 통해 아주 뛰어난 예술가가 되는 좋은 표본을 보여준다"며 "타고난 재능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 열린 가능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거나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뛰어난 작가가 되는 것이 부유한 배경이나 뛰어난 지능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에서 태어난 그는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경찰·잡지편집자·대학강사·스포츠잡지 기자 등 다양한 일을 하다 1976년 '내 마음의 한 조각'으로 데뷔했다. 1986년 발표한 '스포츠라이터'로 작가 입지를 굳혔고, 후속작 '독립기념일'로 1996년 미국 문학사상 최초로 퓰리처상과 펜·포크너상을 동시에 받았다. 또 2012년 장편소설 '캐나다'로 프랑스 페미나 외국문학상, 미국도서관협회의 카네기 앤드루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필립 로스, 존 업다이크, 레이먼드 카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통해 동시대 미국 사회를 날카롭고 냉정한 시선으로 치밀하게 그려냄으로써 '가장 미국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인 김우창 교수는 그를 "보통 사람의 보통의 삶- 고통과 비극을 멀리할 수 없는 보통의 삶, 그 속에서 성실한 삶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작가"로 평하며 "심사위원들은 그의 일상적 삶의 사실주의를 높이 평가했고, 그의 작품에 담긴 서사적 흐름의 메시지에 감동했다. 그의 작품은 비영웅적 삶 속에 있는 영웅적인 삶을 보여준다. 그것은 거대 서사가 없어진 곳에서 찾아낸 작은 거대 서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아내와 함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그는 "한국에 오게 돼 너무나 들뜨고 기쁘다. 무엇보다 박경리문학상을 받아 이런 기회를 갖게 돼 감사하다. 이 상은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든다"고 인사했다.
이어 박경리의 '토지' 영어판을 손에 들어 보이며 "아직 부분을 읽었을 뿐이지만,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다. 실제 경험한 역사 속의 삶을 통해 알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대변하고 보여준다는 점에서 삶에 대한 확증이자 진실이 녹아있다. 이것이 바로 '토지' 같은 위대한 문학의 특징이다. '토지'의 역사적 배경은 한국인들뿐 아니라 전 인류에게도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며 박경리 작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는 이번 방한 기간에 '채식주의자'로 세계에 알려진 작가 한강과 만나는 일정을 잡기도 했다.
그는 "한 이탈리아 친구가 추천해서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됐다. 두 작품이 아주 달랐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느꼈고, 우리 평범한 일상에서 겪기 어려운 대학살 과정을 책 속에서 보는 것은 일종의 특권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을 읽는 것이 우리가 삶을 견디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채식주의자'는 문화적 관점에서 가치 있는 책이었다. 한 여성이 채식주의자로 변하면서 모든 관계를 뒤엎는 상황이 마치 카프카의 '벌레'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되면서 사회와 가족관계에 관한 풍자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세계 모든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인류적 차원의 작품이 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 번역돼 소개된 그의 작품은 '스포츠라이터'와 '캐나다' 등으로, 그의 세계적인 명성에 비교해서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 편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독립기념일'은 1997년 '잃어버린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후 절판됐다가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됐다.
그는 "나를 더 잘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책"이라며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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