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칸 주인 행세로 건설사 등친 日사기집단…551억 꿀꺽했다 덜미
위조여권으로 관공서 속여 증빙서류 받아…"다른 곳에 판다" 건설사 압박
현지 언론 "부동산 열기 틈타 남의 땅 몰래 파는 사기꾼 다시 등장"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에서 건물주인 행세를 하며 대형 건설사를 감쪽같이 속여 거액을 챙긴 사기꾼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기꾼들은 정교하게 조작한 여권으로 관공서를 속이는 한편 '서두르지 않으면 다른 곳에 판다'고 다그치며 건설회사에 성급한 계약을 하게 했다.
17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은 전날 대형 건설사인 세키스이(積水)하우스의 55억엔(약 551억원) 토지거래 사기 피해와 관련해 35~74세 남녀 8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체포된 사기꾼 집단은 도쿄(東京)의 번화가인 JR고탄다(五反田)역 인근 료칸(旅館·일본 전통 숙박시설) 부지(약 2천㎡)의 주인 행세를 하며 이 부지의 판매 대금으로 세키스이하우스로부터 55억엔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이 확인 절차가 꼼꼼한 일본의 관공서와 건설회사를 속이는 데 '성공'한 것은 정교한 여권·공문서 조작 기술을 갖춘 데다가 싼값에 좋은 물건을 확보하려는 건설회사의 욕심을 파고든 덕분이다.
사기집단은 정교하게 위조한 여권을 구청에 내 인감등록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이를 통해 토지의 소유자임을 증명하는 인증서까지 담당 관청으로부터 받아냈다.
이후 사기꾼 집단은 토지 소유자, 부동산 중개자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구매자를 모색했고 여기에 세키스이하우스가 걸려들었다.
"경매를 해도 100억엔 이상은 될 땅인데 싸게 판매하는 것"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한 이 건설사는 임원들이 현장을 둘러본 뒤인 작년 6월 가짜 주인과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사기꾼들은 건설사에 "매매 계약을 협상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다"고 말하며 압박했다.
실소유자는 "토지 매매 계약을 한 적 없다"고 여러 차례 건설회사에 편지를 보냈고 건설회사의 고문변호사도 '거래 상대가 실제 땅 주인인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지만, 계약 담당자는 거래를 방해하는 제3자의 '공작'으로 치부하며 계약을 강행했다.
건설사가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대금을 건넨 지 8일 뒤 담당 관청이 건설사가 신청한 소유권 등기 이전 신청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알리면서다. 경찰은 비슷한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기집단의 멤버로부터 범행 사실의 일부를 자백받았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도쿄 도심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자 열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일본에서는 남의 땅을 주인 몰래 제3자에게 팔아넘기는 사기꾼을 '지멘시(地面師)'라고 부르는데, 과거 부동산 거품 시기에 있다가 경기 불황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이 '지멘시'가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자 다시 나타났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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