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되지 않는 고통은 권력에 굴종한다
일레인 스캐리 '고통받는 몸' 한국어판 첫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화살에 "검은 고통이 실려" 있다고 했다.
잠시 뒤 화살이 만들어낼 처참한 상처와 그로 인한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추상적 고통을 형체가 있는 무기를 통해 인지하려는 정신적 습관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고통과 언어, 권력의 문제를 독창적인 사유로 풀어낸 일레인 스캐리 하버드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의 역작 '고통받는 몸'(오월의봄 펴냄)이 처음 한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저자의 첫 저서로 1985년 출간되자마자 학계와 평단의 주목을 받으면서 저자를 단숨에 석학 반열에 올려놨다. 저자는 문학, 법, 군사, 기술, 정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육체적 고통과 언어, 상상과 창조, 아름다움과 정의, 핵무기의 위험, 시민권과 동의 등을 탐구했다.
책은 고통의 표현 문제를 논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사람에게 육체적 고통은 무엇보다 뚜렷하지만, 타인에게 그 고통을 전달하기는 어렵다.
'고통스러워하기'는 '확신하기'의 가장 생생한 예이지만, 타인의 '고통에 관해 듣기'는 '의심하기'의 가장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고통을 직접 표현할 어휘도 많지 않다. 고통스러울 때 다른 말을 찾지 못한 채 '아!', '악!!' 같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 이유다.
우리는 흔히 '칼로 찌르는 듯한' 혹은 '망치를 내려는 것 같은' 식의 비유법으로 고통을 표현한다.
어쩌면 끔찍한 흉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고통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실제로 고문 도구 이미지가 신문에 실렸을 때 즉각적인 고문 반대 여론이 일어났다고 한다.
고통은 다른 어떤 현상보다 더 언어적 대상화에 저항한다.
"육체적 고통은 언어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언어를 적극적으로 분쇄하여 인간이 언어를 배우기 전에 내는 소리와 울부짖음으로 즉각 되돌린다."
고통을 표현하는 언어는 고통의 윤곽만 보여줄 뿐 부정확하고 불안정하다. 고통의 언어는 지시 대상 사이에 단절을 허용해 잘못된 동일시를 유발하고 고통받는 몸으로부터 쉽게 분리된다.
때론 고통의 언어가 고통의 실체 파악을 더 어렵게 하고 고통을 격화한다.
책은 이러한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이 심각한 정치적·지각적 문제를 야기하며 권력 문제와 복잡하게 뒤얽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통의 표현 실패가 타락한 권력으로 하여금 고통을 전유(專有)하게 하고 권력과 고통이 뒤섞이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고문과 전쟁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고문과 전쟁의 내적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전도된 고통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고문자들의 은어를 보면, 필리핀에서는 잔혹 행위가 벌어지는 방을 '영화 제작실'이라고 불렀고, 남베트남에서는 '영화 감상실', 칠레에서는 '파란 조명이 비추는 무대'라고 불렀다. 이러한 이름들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전시 행위를 기반으로 해서 권력이라는 가공의 환영을 생산하려는 목적을 지닌 기괴한 보상극(劇)이 고문이기 때문이다."
책은 고통의 파괴적 속성을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고통의 창조적 측면으로 나아간다.
저자는 창조를 고통에서 촉발된 행위로 여긴다.
인간의 몸을 투사한 인공물을 만듦으로써 육체적 고통과 불편을 줄이려는 시도가 바로 창조라는 것이다. 고문과 전쟁의 대척점에 있는 이 같은 창조 행위에서 인류 문명 전체가 비롯됐다고 본다.
그리고 고통이 성공적으로 표현될 때 권력에 의한 고통의 전유와 혼합을 막을 수도 있다고 본다.
메이 옮김. 652쪽. 3만7천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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