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석학 "통일 먼저 얘기하면 실패…통합과정의 끝이 통일일뿐"
토마스 마이어 전 도르트문트공대 교수 "서로 존중·공존 중요" 강조
베를린서 한·독 학자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 논의
박명규 "민족주의 넘는 보편적 가치·경제 넘는 사회공동체 추구해야"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의 석학 토마스 마이어 전 도르트문트공대 정치학 교수는 2일(현지시간) 남북한 평화정착 및 관계개선 문제와 관련해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는 것이 중요하지 통일을 처음부터 이야기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마이어 전 교수는 이날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주관으로 열린 '베를린 한반도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서 "동서독의 통합 과정의 끝에 통일이 있었던 것이지 애초 통일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마이어 전 교수는 "서독은 1960∼1970년대에 아무도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지 않았고 추구하지도 않았다"며 "평화로운 공존과 통합을 추구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서독 각 단위에서의 네트워크 구축과 교류 확대, 동독에 대한 서독의 경제적 지원 속에서 서로 적대감을 줄여나갔다"며 "서독의 사람들은 동독의 친구들이 당면한 정치적 문제를 타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었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대화는 차후의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토론에서 "한국에서 통일론은 내부적으로 정쟁을 위해 쓰인다"라며 "독일은 마지막 순간까지 통일이라는 목적론을 말하지 않고 실천론을 중시해 평화와 교류, 보편주의를 추구했고 이 과정의 결과가 통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명규 서울대 교수는 발제에서 "남북 통합의 가치가 민족주의로만 한정되면 남북관계가 악화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며 "남북한이 평화 공존체제를 구축하면서 민족적 가치를 넘는 보편적 가치를 찾고 경제적 공동체를 넘는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도 정치·경제적인 측면이 사회·문화적 측면과 같이 가면서 서로 간의 적대성을 완화했다"며 "학술, 문화, 예술, 체육, 과학 및 기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발제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진행되는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신뢰 구축 등에 달려있다"며 "이제 평화 지키기도 아니고, 평화 만들기를 넘어, 평화 쌓기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남중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은 청중과의 질의응답에서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북한이 현재 보이는 태도가 올바른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관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개회사에서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더욱 합리적인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 독일 통일에서 배워야만 하는 교훈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 북미 관계개선을 선순환시키는 창의적인 방안을 지속해서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범구 주독 한국대사는 축사에서 "독일은 먼저 분단이라는 교실에서 걸어나갔지만 우리는 아직 교실에 남아있는 느낌"이라며 "독일 통일 이전 동서독 체제 간 평화정착을 가져온 1972년의 기본조약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베를린자유대 이은정 교수가 사회를 본 이번 포럼에는 에리히 한 전 동독사회과학원-마르크스·레닌주의철학연구소장과 이봉기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에리크 발라흐 독일국제정치안보연구소 연구위원,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하네스 모슬러 베를린자유대 교수, 노르베르트 바스 전 주한 독일대사 등도 발제 및 토론자로 참석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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