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조카딸 등 경찰관 5명 독립유공자 서훈 추진
문형순 전 제주 성산포서장·안맥결 총경·양한나 경감 등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 발굴에 나선 경찰이 독립유공 서훈을 받지 못한 경찰관들의 유공자 등재를 추진한다.
경찰청은 고(故) 문형순 전 제주 성산포경찰서장(경감) 등 과거 독립운동을 한 경찰관 5명의 독립유공자 심사를 국가보훈처에 요청했다고 3일 밝혔다.
문 전 서장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4월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 '국민부'에서 중앙호위대장을 맡는 등 만주 일대 항일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경찰에 투신했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인 1950년 8월 제주에서 '예비검속자를 총살하라'는 계엄군 명령을 거부해 200여명의 목숨을 구했다.
경찰은 최근 발견한 문 전 서장 인사기록과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명부 등 입증자료를 보훈처에 보내 독립유공 재심사를 요청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 경찰관 3명의 독립유공자 심사도 추진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 조카딸 안맥결 전 서울여자경찰서장(총경)은 1919년 평양 3·1 운동과 숭의여학교 10·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구금됐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을 담당한 여성 독립운동단체 '결백단' 임원이었고, 만삭의 몸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6년 5월 미군정 산하 1기 여자경찰간부로 임용된 뒤 서울여자경찰서장, 치안국 보안과 여경계장 등을 거쳤다. 미군정기 경무부 공안국에는 '여자경찰과'가 신설돼 여경 제도가 시작됐고, 일부 지역에 '여자경찰서'가 설치됐다가 이후 폐지됐다.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이었던 양한나 경감은 1919년 3·1 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상하이와 부산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집해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1923년 임시정부 제11회 의정원 회의에 경상도 대의원으로 참석한 기록이 있다. 본명은 '양귀념'이었으나 안창호 선생이 '양한나'라는 이름을 지어줘 개명했다.
이양전 전 부산여자경찰서장은 1919년 3월1일 경성여고보 동료들과 비밀단체를 조직, 3·1 선언서와 전단을 찍어 배부하는 등 3·1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 3월1일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1주년 축하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일제 경찰의 감시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경찰청은 이밖에 1937년 6월 흥사단 산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안창호·조병옥 등과 함께 복역한 최능진 전 경무부 수사국장도 독립유공자 심사를 요청했다.
경찰이 최근까지 새로 발굴한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은 모두 14명이다. 이들 가운데 조병옥 초대 경무부장 등 9명은 이미 독립유공자로 등록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들을 지속해서 발굴해 경찰 정신의 표상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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