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칼럼] 탐욕사회의 추한 얼굴은 현재진행형
(서울=연합뉴스) 황재훈 논설위원 = 법을 준수하고 산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얘기라서 더 실망스럽다. 얼마 전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의 잦은 위장전입 의혹도 그 한 사례다. 헌법 가치의 최후 수호자로 각종 법률과 행위의 위헌 여부를 최종 심판하는 헌법재판관마저도 법을 어긴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 한구석을 계속 불편하게 만든다. 최소한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들은 그 살아온 이력에 한 번의 위법 사실도 없는 이들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위장전입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런 적 없다고 답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보통 사람들 얘기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국회 인사청문회에 오르는 공직 후보자들은 그렇게도 '우리'와는 다르다. 우리 사회가 내세울 인물들이 그런 사람들밖에 정말 없는지 반문해 보지만,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우리는 지난 정권까지 비슷한 일들을 무수히 봐왔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났지만 바뀌지 않았다. 후보자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지난여름, 폭염이 만드는 높은 불쾌지수만큼 한숨 쉬게 만드는 뉴스들이 적지 않았다. 후반기 국회 출발부터 감행한 20대 국회의 감투 나누기 꼼수도 그중 하나였다. 국회법에 명시된 상임위원장 임기 2년을 무시하고, 16개 중 8개 상임위원장의 임기를 1년 혹은 그보다 더 짧게 쪼개 의원들이 나눠 먹기로 했다는 소식은 혀를 차게 만들었다.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에 정부 고위관료와 판·검사 출신이 대거 포진해 대주주와 경영진을 견제하기보다는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제약업체에서 5년여간 20억 원대 리베이트를 받은 80명에 가까운 의사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도 있었다.
몰염치다. 시민의 인식 변화로 도덕적 잣대는 더 높아지는데 일탈은 계속되니 상대적 허탈감은 더 깊어진다. 올해 1월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이 '시골법관' 임용을 타진했고, 얼마 전 원로법관에 임명돼 여수시법원에서 법관직을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반갑다.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로 개업한 뒤 이른바 '도장값'으로만 수천만 원씩 받는다는 소문대로라면 그의 지원은 많은 물질적인 것에 대한 포기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 속에서도 숨은 탐욕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제부총리가 특별법까지 거론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던 일부 아파트 인터넷 카페나 부녀회 등이 주도하는 집값 담합과 공인중개사에 대한 압박도 그중 하나다. 중국 금융학자 쑹훙빙(宋鴻兵)은 저서 '탐욕경제'에서 "탐욕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탐욕이 판을 치면 그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게 된다.
몰염치와 탐욕이 밀고 당기며 괴물을 만들어 나가는 오늘,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담론을 생각해 본다.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를 돌보는 것이 정의의 본질임을 역설한 마이클 샌들 하버드대 교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를 얘기하면서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를 강조했다. 지도자의 책임, 리더의 역할이 더 커졌다.
다시 첫 얘기로 돌아가 보자. 위장전입 문제 등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장이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의 임명은 강행됐다. 하지만 국회 선출 몫인 3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의 임명동의안 처리 문제와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임명은 현재의 정치공학적 구조 속에서, 예상한 대로 또 그런 결말을 볼 것이다.
앞으로는 정말 달라졌으면 한다. 최소한 법을 다루는 최고법관 후보자만은 위법 사실이 없고, 교육을 다루는 최고 공직자는 자녀교육 관련 위법 논란이 없는, 그런 상식에 맞는 인선이 이뤄져야 한다. 설사 그런 자리에 제안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본인에게 흠이 있다면 고사해야 온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욕심을 넘어 탐욕일 뿐이다. 평생 사소한 위법조차 없이 살아오는 소심한 보통 사람들의 자존심을 위정자, 국가 지도자부터 지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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