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인 줄 알았던 여기는 사막'…빛도 못보고 스러지는 아이돌
소년공화국·크나큰·보너스베이비 등…활동 중단 또는 소속사와 계약해지
"2~3년 안에 못 뜨면 부채 감당 어려워"…무분별한 제작도 문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세계적인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의 노래 '바다'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빽이 없는 중소 아이돌이 두 번째 이름이었어/ 방송에 짤리기는 뭐 부지기수 누구의 땜빵이 우리의 꿈/ 어떤 이들은 회사가 작아서 제대로 못 뜰거래'('바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소위 대형 기획사가 아닌 곳에서 신화를 일궜다는 점에서 '흙수저' 출신 '중소돌'의 기적으로 평가받는다. 한때는 이들에게도 꿈을 위해 뛰어든 바다는 '되려 사막이었고', '사막의 신기루 형태는 보이지만 잡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아이돌 그룹에겐 여전히 신기루가 현실이 되는 이런 성공은 요원하기만 하다. 최근에도 가요계 이름있는 제작자들이 데뷔시킨 그룹들이 표준전속계약서상의 7년을 채우지 못한 채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무기한 활동 중단을 선언하거나, 소속사 경영 문제로 전속 계약이 해지되는 난관에 부딪혔다. 소위 대표적인 그룹이라는 '엑방원'(엑소, 방탄소년단, 워너원), '트래블'(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처럼 이름과 노래를 알리기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2013년 데뷔한 소년공화국은 28일 마지막 싱글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를 선보이고 30일 흰물결아트센터에서 마지막 쇼케이스 및 팬사인회를 개최한다.
앞서 이들은 팬카페를 통해 "오랜 고민 끝에 소년공화국 멤버들과 회사는 그룹 활동을 무기한 중단하는 것으로 협의했다"고 발표했다. 무기한 중단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해체나 다름없다.
이들은 일본에선 지난해까지 음반을 냈지만, 국내 활동은 2016년 3월 미니앨범 'BR: 에볼루션'이 마지막이었다. 멤버들은 KBS 2TV '더 유닛'에 출연하며 도약을 꿈꿨지만 아쉽게도 탈락했다.
2016년 데뷔한 크나큰은 이달 소속사와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따로 팀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전속 해지 사유로 경영상 어려움을 꼽았다. 팀이 해체한 것은 아니지만 소속사가 없고 멤버 김유진 탈퇴로 4인 체제가 돼 당장은 활동도 쉽지 않은 상태다.
이들은 지난해 7월 '그래비티'(GRAVITY) 리패키지 앨범을 낸 뒤 올해 4월 보컬 라인이 부른 싱글 '한 끗 차이'를 발표했을 뿐 완전체 활동은 1년여 공백기가 있었다. 역시 JTBC '믹스나인'에 출연해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1월 데뷔한 걸그룹 보너스베이비도 1년 8개월 만인 이달 공식 팬카페를 통해 활동 잠정 중단을 알렸다. 지난해 4월까지 단 두 장 음반을 냈으며 올해 음반 활동은 전무했다. 멤버 공유는 팀 탈퇴를 결정했다.
가요 관계자들은 지금도 중소 기획사에서 쉼 없이 새 얼굴이 배출되고 있어 경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시련을 맞는 그룹들이 더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이 과정에서 소속사와 갈등을 빚고 법적 분쟁을 치르는 그룹도 잇달았다. 지난해에도 그룹 전설이 소속사와 분쟁을 벌인 끝에 승소했지만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룹 인엑스도 소속사의 열악한 지원을 호소하며 전속계약 해지 소송을 내 지난 6월 승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 신인 아이돌 그룹 기획사 대표는 "5인조 이상 팀을 데뷔시켜 음반 1장을 내는데 보통 10억~20억원 비용이 들어간다"며 "트레이닝 비용부터 숙소비, 음반과 뮤직비디오 제작비, 마케팅비, 의상과 헤어메이크업 비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웬만한 기획사는 2~3년 안에 반응을 얻지 못하면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획사 홍보 실장은 "소속사 적자가 심화하면 컴백 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연습을 위한 지원조차 못 할 경우 양측 갈등이 분쟁으로 이어지곤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가요계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자본을 빌미로 기획사를 차려 무분별하게 팀을 데뷔시키는 기획사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방'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직접 기획사를 차리고 아이돌을 데뷔시켜 팬덤은 한정된 상태에서 비슷한 콘셉트 그룹이 과잉 공급 수준이란 것이다.
한 기획사 신인개발팀 팀장은 "보통 그런 회사들은 시스템이 없어 외부에 프로듀싱과 방송 PR을 맡긴다"며 "지금은 음반 한두장으로 뜨는 시대가 아닌데도, 들인 비용 대비 빠른 반응이 없으면 손을 놓아 버린다. 업계 종사자들에게조차 이름이 생소한 팀들의 해체 소속이 들릴 때면 멤버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 씁쓸하다"고 꼬집었다.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팀이 해체되면 다수 아이돌 가수들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한 아이돌 가수는 몇 개월 전부터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팀 활동은 정지된 상태로 회사가 계약을 해지해주지도 않아 다른 기획사로의 이적 등 돌파구도 없는 상황이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가수 길을 걸었기에 집에 손을 벌리기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 중견 가수도 "한번은 음식점에서 고기를 굽던 예쁜 청년이 팀 이름은 얘기 안 하면서, 어떤 기획사에서 아이돌 가수로 활동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무대의 맛을 느꼈을 텐데, 꿈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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