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박물관서 꺼내자" 현대적으로 읽는 작품론
100여명 참여해 '한국 고전문학 작품론' 여섯 권 펴내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고전문학은 우리 국어·문학 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정작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감성을 고양하는 '문학'으로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 고리타분한 옛 시대의 유물이나 교과서 속에 박제된 내용으로 기억될 뿐이다.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이런 현실이 잘못된 교육에 있다고 지적한다. 고전문학 작품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부족하고, 이해와 해석의 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입시 위주의 단편적인 내용으로 읽히고 교육되는 현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민족문학사연구소 회원을 중심으로 전공자 100여 명이 참여해 고전문학 교육을 위한 책을 내놨다. 그동안의 국내 고전문학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여섯 권 분량의 '한국 고전문학 작품론'(출판사 휴머니스트)이다.
기획위원단은 시리즈 서문에 "문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은 여럿이지만, 그 가운데 '작품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이해와 해석'은 문학 교육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며 "그런데 중등교육 현장에 제공되는 작품에 대한 지식·정보들 가운데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학계에서 인정되고 있는 정설이나 통설이 아닌 견해, 학계에서 이미 폐기된 견해가 제공되는가 하면, 심지어는 잘못된 지식·정보가 제공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공되는 지식·정보는 암기를 전제로 한 단편적 지식의 나열에 그칠 경우가 많아서 흥미로운 수업을 가능케 하는 바탕 자료의 구실을 하기 어렵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해와 해석의 차원에서 쟁점은 무엇인지, 정설이나 통설이 어떻게 정설이나 통설이 될 수 있었는지,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알아야 보람 있는 수업, 흥미로운 수업, 창의성을 촉발하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교육 현장의 오류를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는 목표로 고전소설 2권(한문소설·한글소설)과 한문학 2권(한시와 한문산문·한문고전), 고전시가 1권, 구비문학 1권을 합친 총 6권을 함께 집필해냈다.
책 내용을 보면 그동안 널리 알려진 해석을 벗어나 작품이 나온 시대상을 넓게 조망하고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 견해들이 눈에 띈다.
2권 '한글소설' 중 '심청전' 편은 심학규가 맹인이 된 배경에 조선 후기 양반의 사회·경제적 몰락이 드리워져 있다든가, 그의 아내 '곽씨 부인'의 죽음이 극한적 궁핍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노산으로 아이를 낳은 뒤 혼자 산후 조리를 해야 했던 당시 여성들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또 심청을 단순히 가련하고 피동적인 인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모진 멸시에 좌절하지도 않았지만, 값싼 동정에도 길들여지지도 않았으며, 자기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삶의 이치를 깨닫고 실천해 나간 성숙하고 강인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죽음을 택한 것도 효(孝)의 관념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심청이 7세부터 구걸과 삯바느질로 부친을 봉양하다 마침내 부친을 위해 몸까지 팔았던 행위는 핏덩이로 버려진 자신을 키워낸 눈먼 아비에 대한 인간적 보답, 아니 부녀간에 싹튼 정리(情理)로 이해해야 옳다. 죽음을 앞둔 인간적 두려움을, 뱃전에 선 그녀는 아비에 대한 '정(情)'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녀를 두고 '효녀네, 아니네, 잘했네, 잘못했네' 하고 따지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흠집내기였는지 모른다. 그러하다. 심청의 죽음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간난의 시간을 함께한 육친의 관계가 싹틔운 자연스러운 정의 발로였기 때문이다." (354∼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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