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달걀 파동 1년…농장주 "친환경 달걀 도전 멈추지 않아"
영천서 영양으로 터전 옮겨 유해물질 없는 달걀 생산·납품
주민과 함께 작목반 설립 목표…축산업 규제가 걸림돌
(영양=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그 사건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털끝 하나 도와준 것이 없습니다. 모두 제 책임으로만 남았을 뿐입니다."
최근 경북 영양군 영양읍에서 만난 이몽희(56)씨는 "'그 사건'만 떠올리면 착잡하다"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말하는 그 사건은 지난해 8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충제 달걀 파동이다.
특히 그의 농장 달걀에서는 DDT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 성분이 나왔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이씨는 "농장에 DDT를 비롯한 살충제, 제초제 한 번 뿌린 적 없다"며 "양계장 주변 풀도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손수 베어낼 정도로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당시 영천에 있는 이씨 농장은 친환경 농장 표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좁은 닭장에서 빽빽하게 키우는 일반 밀식 산란계 농장과 달리 충분히 넓은 흙 바닥에 재래닭을 풀어놓고 키웠다.
친환경으로 키운 그의 닭에서 나온 달걀은 전량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사 갔다.
그것도 일반 달걀보다 네다섯 배 비싼 값을 치렀다. 그럼에도 늘 물량이 부족했다.
전국에 친환경 인증을 받은 달걀은 많으나 재래종 닭으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달걀은 이씨 농장을 포함해 2곳뿐이었다.
관련 업계에선 알아주는 농장을 일궜지만,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그는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부 조사 결과 농장 흙에서 DDT 성분이 나왔다. DDT는 과거 농경지에 광범위하게 쓰였으나 1970년대에 생산과 판매가 전면 중단된 것이다.
이씨는 "양계장 하던 농장은 애초 다른 사람이 복숭아를 재배하던 곳이다"며 "과수원을 운영한 사람이 오래전에 뿌린 DDT가 흙에 남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씨와 정부는 DDT가 남은 땅에서 닭이 흙 목욕을 하거나 체내에 흡수하면서 달걀로 DDT 성분이 옮아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살충제 달걀 파동이 일어난 직후인 지난해 8월 24일 모든 닭과 달걀을 폐기 처분하고 농장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그는 삶의 터전을 영양으로 옮겼다. 영천 양계장은 그냥 버려뒀다.
그는 지난 4월 말 영양읍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다시 양계장을 만들고 주변인과 함께 농업회사법인 닭실재래닭연구소를 설립했다.
이곳에서도 친환경 방식으로 재래닭을 키운다.
양계장 8개 동을 실내외 공간으로 분리하고 바닥에 흙과 나무껍질을 깔았다.
일반 산란계 농장 주변에 가면 역한 냄새가 나지만 이씨 농장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는 "따로 분변을 치우지 않아도 건강한 닭에서 나오는 똥과 오줌은 냄새가 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분해된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영천에서 키운 것과 비슷한 8천마리를 키운다. 10만마리 이상 사육하는 곳이 많은 일반 산란계 농장보다 훨씬 적다.
8천마리가 하루에 낳는 달걀이 2천900개에서 3천개 정도여서 산란율은 40%가 채 안 된다.
일반 산란계 산란율 80∼90%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그는 친환경적으로 닭을 키우고 그 닭에서 달걀을 얻어낸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그는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거래를 중단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 6월부터 다시 납품하기 시작했다.
납품을 재개하기까지 엄청나게 힘든 과정을 거쳤다.
흙에서 잔류 농약을 검사하고 완벽하게 농약이나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도록 무농약 풀이나 나무껍질을 양계장 바닥에 깔았다.
이씨는 "국내산 왕겨나 짚을 비롯해 수입건초에서는 농약이 검출돼 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두 달간 각종 검사로 닭과 달걀에 아무런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 뒤에야 거래가 이어졌다.
살충제 달걀 파동 전과 마찬가지로 비싼 값에 팔지만, 늘 공급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씨 양계장에는 선풍기도 없다. 전염병에 대비해 약을 투여하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닭은 폭염에도 죽지 않고 질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닭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이씨는 사육하는 닭을 2만마리까지 늘리고 우량 재래종 닭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또 주변 50농가가 각각 재래닭 1천마리를 친환경 방식으로 키우며 달걀을 생산하도록 하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현재처럼 하면 나 혼자 먹고사는 것이야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노인들도 같이 먹고살면 더 좋잖아요. 재래닭 1천마리를 키워 달걀을 생산하면 한 달에 300만원은 벌 수 있어요. 시골에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료는 자동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큰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고 초기 투자비용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다만 축산업 허가를 내주는 데 까다로운 지방자치단체나 주민 분위기가 관건이다.
이씨는 "냄새가 별로 나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하는데도 덮어놓고 축산업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유럽 선진국일수록 축산업이 발달한 만큼 우리나라도 축산업 정책을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친환경 양계장을 하면 농촌 인구 감소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올 때 달걀을 포장하는 실내 작업장에 붙은 사훈이 눈에 들어왔다.
'위기는 반드시 극복한다'였다.
sds12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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