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금리인상 앞두고 신흥국 또 '위태'…통화·주식 투매 확산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글로벌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신흥시장이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폭탄의 '뇌관'으로 다시 거론되고 있다.
터키와 아르헨티나의 외환위기로 시작된 불안이 지난달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번지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선 일부 국가의 위기가 신흥국 전체로 전염될 수 있다는 공포가 일고 있다.
특히 이달 말 미국의 기준금리가 또다시 추가 인상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어서 달러 강세와 금리 상승으로 신흥국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 신흥국 통화·주식 투매 양상…달러 빚 불안
통화 가치 폭락으로 외환위기를 맞은 아르헨티나와 터키는 물론 인도네시아, 인도, 남아공, 브라질 등의 금융시장도 환율 불안에 요동치고 있다.
16일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신흥국 통화 매도세로 인해 MSCI 신흥시장 통화 지수는 올해 7% 넘게 하락했다. 이 지수는 6월부터 내림세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일부 신흥국 통화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흥국 통화 하락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이 빨라지는 데다 외화 부채가 많은 일부 신흥국의 상환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노무라는 신흥국 중 환율위기를 겪을 위험이 있는 나라로 스리랑카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이집트, 터키, 우크라이나 등 7개국을 꼽았다.
이들 나라 가운데 남아공과 파키스탄을 뺀 5개국은 이미 현재 위기에 처했거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분석에 따르면 신흥시장 통화들의 상관관계는 올해 들어 급격히 높아져 위기가 전염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국 통화의 상관관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평균 수준을 넘어섰다.
최근 터키 리라와 아르헨티나의 페소화가 각각 급락하자 다른 신흥국 통화들도 동반 하락하는 날이 많아졌다.
통화뿐 아니라 신흥시장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MSCI 신흥시장 지수는 연초 대비 12%가량 하락했고 1월 말의 고점보다는 20%가량 내려 이미 '약세장'(Bear Market)에 진입했다.
터키와 아르헨티나의 외환위기로 신흥시장에 대한 불안 심리가 높아지자 투자자들이 신흥국 통화와 주식, 채권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는 신호다.
달러 강세와 금리 상승으로 신흥국의 달러 부채상환 리스크는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IIF에 따르면 내년 말 만기인 2조7천억달러의 부채 가운데 달러로 표시된 것은 1조달러에 육박한다.
외화 부채가 많고 자국 통화 가치가 최근 폭락한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터키 등은 특히 위험한 나라로 꼽힌다. 부채 가운데 달러 부채의 비중이 50∼75%에 달하는 나라들도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신흥시장 전반에 누적된 대외부채가 주요 불안 요인이며, 일부 취약 국가는 저성장과 고용 부진, 재정 악화 등의 내재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브라질 대선과 러시아 제재 등 정치 상황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혔다.
JP모건과 블랙록 등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취약한 시장에서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개별 시장의 여건과 상관없이 신흥국 전반에 대한 무차별적 매도에 나서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미국, 신흥시장 불안에도 금리 계속 올릴 듯
미국 연준은 고용 호조와 물가상승 속에 이달 25∼2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올릴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연준은 상반기 2차례에 이어 하반기에 9월을 포함해 2차례 더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어 내년에도 금리 인상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금리 결정 판단엔 자국 내 경기가 최우선 고려요인이기 때문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신흥국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에 주는 충격을 외면할 순 없지만, 미국 경기 호황을 고려해 향후 인플레 가능성에 대비하는 한편 제로(0)까지 낮췄던 기준금리를 정상화한다는 정책 기조를 바꾸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신흥시장에서 6월 위기설이 나온 데 이어 일각에서는 9월 위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질 때마다 신흥시장 위기설이 반복적으로 고개를 드는 양상이다.
신흥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저금리와 약달러의 수혜를 입었다. 마구 풀린 자금은 고수익을 찾아 신흥시장으로 몰렸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기에 신흥시장은 벼랑으로 몰린 사례가 많다.
미국이 1990년대 중반 경기침체에서 회복하면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난 신흥국은 멕시코부터 태국과 한국, 인도네시아, 러시아까지 잇따라 무너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에는 신흥시장이 위기를 맞았을 때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 구조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통화 긴축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2015년 12월 기준금리를 0.25%p 올린 후 신흥시장이 충격을 받자 추가 금리 인상을 미뤘다. 신흥시장 불안으로 미국 경제까지 타격을 입을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1990년대 말에 금리를 올렸을 때도 1998년 러시아 국가부도 사태까지 이어지자 결국 이에 대응해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게 WSJ의 분석이다. 연준이 2016년 초만큼 신흥시장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 데다 미국 금융시장도 1990년대 말보다 신흥시장 위기에 덜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흥시장의 위기는 무역전쟁의 충격과 겹쳐 증폭될 수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신흥국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무역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신흥국이 직면한 주요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라가르드는 터키와 아르헨티나의 위기가 세계의 다른 개발도상국들로 퍼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kimy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