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으로 변한 종로 한복판 빌딩 지하…600년역사 고스란히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개관…개발 과정서 발굴한 건물터·골목길 그대로 보전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땅속에 묻혀 있던 조선 초기∼일제 강점기 600년의 역사가 종로 한복판 고층 건물 지하에서 깨어났다.
26층짜리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발굴된 옛 건물터, 골목길과 1천점이 넘는 생활 유물이 고스란히 보존됐다.
서울시는 종로구 공평동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 전체를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만들어 문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연면적 3천817㎡의 서울 최대 규모 유적 전시관이다.
전시관의 투명한 유리 바닥과 관람 데크를 따라 걸으면 발아래로 16∼17세기 건물터와 골목길을 관람할 수 있다.
각각 다른 형태의 집터 3개를 복원해 조선시대 한양에 어떤 집이 있었는지 체험해볼 수 있다.
'전동 큰 집'이라고 이름 붙인 집터 앞에는 지금은 사라진 가옥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을 뒀다. 당시 모습과 현재 집터를 비교해볼 수 있다.
'골목길 ㅁ자 집' 터에서는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디지털로 복원된 집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이문안길 작은 집'은 터만 남아 있는 곳에 실제와 같은 크기로 복원한 가옥이다.
조선시대부터 수백년 간 사용된 골목길 42m는 관람객이 실제로 걸어볼 수 있도록 했다.
청동화로, 거울, 일제강점기 담뱃가게 간판 등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 1천여 점도 만날 수 있다. 인근 청진동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 20점도 함께 전시된다.
'참조기 이석' 등 한 곳에서 다량 출토된 생선 뼈를 통해 당시 한양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즐겨 먹었는지도 알 수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개발-보존의 공존을 유도한 첫 사례다.
2015년부터 건물을 새로 올리는 과정에서 도로·골목·집터 같은 매장 문화재가 대규모로 발굴되자 서울시가 문화재를 보존하면 건물 용적률을 높여줘 손실을 보전해주겠다고 제안했고, 민간 사업자가 이를 받아들였다.
당초 용적률은 999%로 건물 A동을 22층, B동은 26층으로 지을 수 있었으나 용적률 인센티브 200%를 받아 A·B동 모두 26층으로 올렸다.
서울시는 이처럼 개발-보존이 공존하는 방식을 '공평동 룰(Rule)'로 이름 붙여 앞으로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굴되는 매장 문화재 관리 원칙으로 삼을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의 결정과 민간 사업시행자의 협력으로 도시유적과 기억을 원래 위치에 전면적으로 보존한 도시박물관이 조성됐다"며 "도시정책의 선례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의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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