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 유럽회의론자들도 분열…정책서 발간 취소
"'하드 브렉시트' 정책서 대신 북아일랜드 국경 등 특정 이슈에 집중"
메이 총리 측 "'소프트 브렉시트' 계획 한층 탄력받을 것" 기대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테리사 메이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 전략, 이른바 '체커스 계획'에 반발해 '하드 브렉시트' 청사진을 내놓겠다던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들의 시도가 사실상 무산됐다.
앞서 메이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지난 7월 총리 지방관저(체커스)에서 열린 회의에서 '소프트 브렉시트' 계획에 대해 합의한 뒤 이후 발간된 '브렉시트 백서'를 통해 구체화했다.
그러나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유럽 연구단체'(ERG)는 이에 반발, 영국이 유럽연합(EU)과 아무런 미래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채 결별하는 '하드 브렉시트'의 긍정적인 면을 담은 정책서를 준비해왔다.
11일(현지시간)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RG의 수장인 제이컵 리스-모그 하원의원은 전날 정책서가 발간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앞서 ERG는 140쪽 분량의 정책서 초안을 제작했다.
모그 의원은 포괄적인 브렉시트 청사진을 내놓기보다는 특정 이슈에 더 집중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구체적으로 오는 12일 언론 간담회를 열고 브렉시트 협상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인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 문제를 다루겠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ERG는 EU와 캐나다 간 모델을 토대로 그보다 높은 수준을 뜻하는 '캐나다-플러스' 무역협정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EU-캐나다 FTA인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은 자유로운 교역 측면에서 영국 측이 원하는 영-EU FTA 수준에 크게 부족한 모델이다.
캐나다 모델 하에서 영국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되 EU와의 교역에서 관세가 부과되지는 않는다.
다만 CETA는 서비스 교역에 제한을 두고 있어 전체 경제의 80%를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영국 측 입장에서는 크게 부족한 모델로 꼽힌다.
ERG가 '하드 브렉시트' 정책서 발간을 포기한 것은 내부 의견이 좀처럼 하나로 모이지 않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ERG는 유럽회의론자 단체로 브렉시트를 지지하지만 구체적인 견해는 제각각이다.
한 유럽회의론자는 "ERG는 균일한 그룹이 아니다"면서 "어떤 이들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유럽경제지역(EEA)에 남는 것에 대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ERG의 '하드 브렉시트' 정책서 수준 자체가 조악해 이를 발간할 경우 오히려 메이 총리 측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고려됐다.
실제 ERG의 정책서 초안에는 브렉시트 이후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감세를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일명 '스타워즈'로 불렸던 미국 레이건 행정부 시절 전략방위구상(SDI)과 비슷한 핵 미사실 보호막을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 등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디어들이 대거 포함됐다.
메이 총리의 '체커스 계획'에 반발해 사임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데이비드 데이비스 전 브렉시트부 장관 등 '거물'들이 ERG의 정책서 발간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은 점도 이 때문이다.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들은 브렉시트 전략뿐만 아니라 메이 총리의 불신임 여부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존슨 전 장관의 경우 메이 총리의 당권에 대항할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데이비스 전 장관은 메이 총리가 총리직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메이 총리 측은 유럽회의론자들이 '하드 브렉시트' 정책서 발간을 포기한 것은 '플랜 B'가 없기 때문이라며, '체커스 계획'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직전 내무장관을 맡았던 친 EU 성향 의원인 앰버 루드는 "ERG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며 "협상 타결을 위해 총리의 계획을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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